어떤 날의 퇴근 길. 배경음악은 아침 출근과는 사뭇 다르게 느린 곡으로 선정하곤 한다. "계절의 변화에 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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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휙휙 바뀐다. 계절마다 고유의 냄새가 있는데, 여름향기가 물씬 나던 때가 엊그제 같지만 벌써 은은한 가을향이 돈다.
내 코는 비염을 앓고 있어서 제법 정확하게 날씨의 변화를 알아채는 편인데, 최근 어느 날 갑자기 코가 간질간질 한 것이 콧물도 나오고 콧속 끝을 스치는 한 가닥의 찬바람을 느꼈기 때문에 어쩐지 가을이 왔나 했다.
아니나다를까 절기상 입추였다.
삶에 슬픈 일이 벌어지면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고 기쁜 일이 생기면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데 그렇게 감정이 요동칠 때에도 계절은 묵묵히 본연의 소임만을 다한다. 여름에는 무지하게 덥다가 때가되면 가을을 알리기 때문이다.
매섭게 다가오는 그 변화에 이쯤되면, 조금 과장을 보태서, 넌더리가 난다.
무심하게도 흘러가는 시간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안다. 세월이 빠르다는거. 그치만 마치 입증이라도 하듯이 때되면 꼭 독촉하는 것 같다.
'봐. 가을(또는 겨울)이 왔지?'하고.
그런 변화가 느껴지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그간 세워뒀던 계획을 얼마나 지키지 못했는지 자기검열도 한다. 새롭게 투두리스트to do list를 짜보기도 한다. 자연의 섭리 앞에 새로운 계획이나 짜고 있는 한낱 미물의 인간이란.
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은 고작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터에 출근하는 것과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독서, 그리고 사회성 유지를 위한 지인 또는 가족과의 대화가 전부다. 아니 전부인 듯 싶어 때로는 사무치게 고독하다.
가끔 때이른 개나리와 때늦은 고추잠자리가 칼같은 계절의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이내 시간은 흘러간다.
그 흐름에 따라 인간의 수명도 운명을 같이 하고있단 걸 의식이라도 하는 날엔 몹시 헛헛하다.
노래와 글쓰기가 곁에 남아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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