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면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보여서 일부러 지적하고 싶은 적이 많아요. 우리는 서로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면서도 할퀴고 찢기를 반복했죠. 각자의 기억 속에 잊힌, 기억하는 사람만 아는 과거의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요.
나에게서 종종 당신이 연상되어요. 그게 매우 좋고 싫어요. 당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질은 이루고야 말겠다는 독기, 팩 하는 성미,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뾰족함이 있죠. 특히 내가 뾰족함을 장착했던 것이 당신을 걱정스럽게 만들었어요. 나는 그 걱정은 무시한 채 한 우물만 팠고 더욱 얇고 삐뚤게 솟아버렸죠.
나는 당신의 패롭던 시절을 미워했어요.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요. 목표와는 반대로 움직여서 당신이 세상을 원망했던 시간을요. 그래서 나를 껴안아줄 여유 따위 없었던 시기 말이에요. 어린 나는 당신이 무서워서 멀리 하고 싶었어요. 사춘기를 거치면서 당신과 나의 성정이 참으로 많이 닮았다는 걸 깨달았죠. 당신은 나에게서 당신을 보고, 나는 당신에게서 나를 봐요. 그래서인지 나는 당신을 이해하면서도 원망했지만, 소량의 인간성을 발견하면 연민을 느꼈죠. 이런 모순적인 마음을 쭉 품고 있었어요.
나는 약 4년 간 우울증과 공황발작으로 몸부림치다가 잔잔해지다가를 반복했어요. 처음 질병을 진단받고 당신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어요. 그 뒤로 몇 년간 나는 당신의 돌봄을 받았죠. 나는 자주 죽음의 문턱에 섰고, 당신은 온 힘을 다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서 있던 내 등을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나 몰래 뒤에서 눈물을 훔쳤죠. 그럼에도 내 병은 자꾸만 왔다 갔다 했어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비롯한 연인들이 마음 아파할까 봐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을 꿋꿋하게 버텼죠. 그럼에도 나는 쓰러졌어요. 가쁜 숨을 내쉬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식은땀을 흘렸죠. 모든 물체가 흔들려서 정신을 못 차렸죠.
아직도 응급실에 실려 간 나에게 곧바로 달려온 당신을 떠올려요. 당신은 아픈 나를 탓하지 않았어요. 어떤 심정을 꾹꾹 누르며 왔을지 가늠할 수 없었어요. 애써 무너지는 마음을 웃음으로 감추고 구급차에 올라탄 당신은 시체처럼 누워있는 나를 어린아이처럼 대했죠. 당신 특유의 순수한 웃음을 지으면서요. 내 이름을 부르고 ‘우리 아가’라고 말하면서요. 할 줄 아는 말이 고작 그것뿐인 사람처럼 그 단어들을 반복했어요.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당신의 손은 어쩜 그리도 따뜻했는지 몰라요. 호흡이 힘들고 몸을 덜덜 떨던 내가 아주 약간의 안정을 찾은 건 그 온기 덕이었어요.
“아가야, 많이 힘들었구나. 괜찮아, 아빠가 왔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 굵은 눈물방울을 쏟아냈어요. 울면 숨 쉬기 힘드니 천천히 울라는 말을 덧붙일 때, 내 마음은 아플 정도로 벅찼고 더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내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죠. 이마에 입을 맞추고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내가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라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과 함께 나를 다독였죠.
응급실에 나오면서 당신이 나에게 건넨 건 특정 커피 브랜드의 라테였어요. 이십 대 초반의 나는 그 라테를 주야장천 마셨는데, 당신은 그런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이제 나는 그 음료를 마시지 않는데, 당신의 눈에 비친 나는 여전히 그 달달한 라테를 좋아하는 이십 대 초반 언저리의 딸이었나 봐요. 나는 그 라테를 손에 쥐고 숨을 죽이며 또다시 울었어요. 컵 위에 눈물이 떨어질 만큼, 옷소매가 축축하게 젖을 만큼요.
그날 이후, 아픈 나를 위해서 당신이 한 행동은 먹이는 것이었어요. “밥 많이 먹으면 나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당신은 손수 요리를 해줬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든 내색 없이 매번 먹고 싶은 걸 말하라고 했죠. 기본적인 김치찌개, 된장찌개를 끓였고 어느 날은 차돌박이 국수, 감바스, 빠에야, 스테이크, 엔쵸비 파스타를 해주었죠. 음식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았어요. 마치 음식으로 세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어요. 입맛이 없어서 조금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으면, 한 입만 더 먹으라며 직접 내 입 안에 넣어줬죠.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고 챙기는 마음이 그 수저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있는 힘을 다해 씹고 삼켰어요. 덕분에 나는 조금씩 건강해졌고, 새로운 일을 하면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
여전히 당신이 미울 때도 있어요. 왜 말을 저렇게 밖에 하지 못할까, 왜 낯 간지러운 말을 피할까, 왜, 왜, 왜. 물음표와 짜증이 동시에 피어오르면서도 그만큼 당신을 향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온 사람이니까요. 미우면서도 좋은 당신. 사람들은 이 마음을 애증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요, 나와 당신은 애증으로 묶였어요.
미움과 사랑은 강력한 성질을 지녀요. 그걸 동시에 포괄하는 애증은 내 마음에 수북하게 남아있을 거예요. 당신은 나에게 애증, 그 자체예요.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상대의 범주가 너무나도 커서 절대 잊을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나는 당신을 열렬히 미워하다가 마침내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는 뒤바뀐 감정을 머리와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서 당신을 떠올릴 것 같아요.
당신은 우주 같아요. 그거 알아요? 나는 우주가 무서워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아요. 바다도 마찬가지예요. 난 심해를 보면 심장이 뛰고 아찔하고 식은땀이 나요. 하지만 그림으로 그려진 우주와 바다는 아름답고 평온하게 느껴져요. 당신은 나에게 그림으로 그려진 우주이자 바다예요.
최근 들어 당신은 조금 우울해 보였어요.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드세고 든든하던 당신이 축 처진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요란했어요. 당신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건 너무나도 낯설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당신이 조금의 활기를 찾길 바라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량의 지식을 장착했어도 여전히 미약한 글쓰기가 전부지만, 이 편지로 당신에게 생기가 생기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당신을 지킬게요. 애증으로 엮였어도 서로를 걱정하고 감싸 안는 우리. 이미 다 커버린 나를 여전히 힘껏 안아 올리는 당신. 때로는 아이 같고 때로는 어른 같은 당신을 바라보는 나. 그림으로 그려진 우주이자 바다인 당신, 앞으로 우리가 또다시 만들어 나갈 자취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당신도 그러면 참 기쁠 것 같아요. 조만간 찾아갈게요. 영화 <시네마 천국>과 비틀즈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의 아빠 은석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