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cember 디셈버 May 15. 2024

12. 첫 근무

인계는 어려워

오랜만에 임상으로 돌아가는, 게다가 해외에서의 첫 출근일이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잠을 설치고 일찍 눈을 떠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매니저가 일러준 인계 및 근무교대 시간인 7시 30분보다 이른 7시 10분쯤 도착해 옷과 신발을 갈아신고 병동으로 들어가기 전 매니저가 나를 맞아주었다. 매니저는 내게 오늘 나의 프리셉터가 될 간호사를 소개시켜주려 했으나 아직 출근 전인 것 같다며 내게 기본적인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병동에서는 마스크를 늘 쓰고 있어야 하며, 병동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화장실이 어디고, 병동 키친이 어디인지 등등을 설명듣던 와중 프리셉터가 도착했고,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프리셉터는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고, 인계를 먼저 듣고 시작하자며 나를 데리고 나이트 번 간호사를 찾아갔다.


나이트 번 간호사에게도 간단히 내 소개를 하자 바로 인계가 시작되었는데, 인계가 시작하고 1분도 되지 않아 큰일났다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역시나 영어로 되는 인계에 관련 부서 경력이 없다보니 약 10%도 이해하지 못했다. 온갖 새로운 약물명에 새로운 질병명을 알아듣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악센트가 쉽지 않았다. 빠르게 환자의 상태를 갈무리 하니 흘려 발음하기도 하고, 서로 알고 있는 부분은 넘어가기도 하니 첫 근무인 나로서는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세 명의 환자를 인계받고 내 프리셉터는 어때? 라고 물었고, 나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프리셉터는 웃으며 첫 날이니 당연히 그렇지! 라고 쾌활하게 웃으며 내게 천천히 환자의 상태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간단히 설명을 듣고, 전체인계를 위해 모든 간호사가 모인 장소로 가 당일 각자가 맡은 환자들에 대해 간략히 브리핑을 하는데 이 또한 한국과는 아주 달랐다. 병원마다, 병동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각자의 환자를 인수인계 받고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매니저급 간호사에게 알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각자의 인계를 받고, 더 간략한 내용을 전체 브리핑에서 한 번 더 언급을 하고 혹시 빠진 것이 있거나 조금 더 주의깊게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으면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다.


그렇게 인계를 받고 프리셉터를 따라가자 프리셉터는 내게 오늘의 목표는 근무 루틴을 살펴보는 거니까 너무 부담갖지 말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해주며 다시 한 번 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아침투약을 위해 투약실로 향하자 역시 한국과는 다르게 모든 약들이 병동에 상비되어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국으로 처방전이 올라가고, 그 처방전에 맞추어 약국에서 약물을 준비해 병동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였다면 이 곳에는 모든 약물들이 구비되어 있어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담당 간호사가 직접 투약을 준비하게 되어 있었다.


새삼 한국에서 근무하며 약물이 잘못 내려오거나 혹은 덜 내려오기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떨어트려 파손되거나 할 때마다 새로운 약을 타오는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하기에 곤란했던 경험이 스쳐지나갔다. 프리셉터에게 만약 약물을 준비하다가 파손이 된다면 그냥 새 약물을 꺼내서 써도 되는 지 물어보니 마약같은 특별히 중요한 약물이 아니라면 잘 폐기한 후 새로운 약물을 꺼내서 쓰면 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복잡한 절차가 없어 투약준비과정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프리셉터를 따라 아침 라운딩을 돌고, 투약을 마치고 이것 저것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첫 근무를 마쳤다. 물론 기본적인 것들은 한국과 틀이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많은 작은 것들에서 문화차이를 느끼게 된 하루였다.

이전 11화 11. 검은색 나이키 백팩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