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수술실까지, 12일 같았던 12시간.

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by 마침내

응급실에 환자로도 보호자로도 갔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갈 때마다 생기는 의문점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쩜 그렇게 아픈 사람이 많아

그 넓은 응급실이 늘 환자로 붐비는지.

두 번째는, 늘 응급의학과 선생님을 만난 후에

담당과 선생님을 만나려면

2시간 이상 대기는 디폴트인지.

이런 부류의 의문들이다.


응급실은 그렇게 갈 때마다 낯설고 힘든 곳이다.




시아버지를 모시고 바로 어제 왔다 간

병원의 응급실에 갔음에도

검사 기록은 이전 병원에서 받은 것이기에

다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검사는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검사 후 대기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었다.


일단 열이 나고 혈액검사 상 백혈구 수치가 높게 나왔으니

심한 염증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시아버지가 너무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기에

진통제 처방부터 요청했더니

해열진통제가 같이 들어가고 있다 간호사가 답했다.

혹시 지금까지 마약성 진통제인 아이알코돈을

먹고 있었는데 지금 주사로 들어가는 해열진통제로도

통증 조절이 가능한건지 물어보았고

답을 듣기까지는 30분이 넘게 걸렸다.


드디어 만난 응급의학과 전문의(대게 펠로우라 지칭되는)는 CT를 보았지만 정확한 판독을 하기 어려워

영상의학과에 진단을 요청했으니 답변이 오면

다시 말해주겠다 이야기하며 이미 암은 곳곳에 퍼져있다고 했다.


이때 썼던 그 의사의 표현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의사의 워딩을 정확하게 적자면

"담낭도 넘어갔고, 쓸개도 먹었고, 신장은 이미 알고 계시고.. 다 암이에요 암"이라고 했다.


당시 그의 말을 들으며 퍼질 대로 퍼졌다는

암이 걱정되기도 하면서

왜 하필 쓰는 단어가 저따위일까 라는 생각을

조금 했던 것 같고

쓸개까지 있다는 암 얘기는 소화기내과 교수님 진료 때

따로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응급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 힘든 곳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소화기내과 선생님을 만난 날 응급실에서 들은

내용을 여쭤보았더니

도대체 어떤 □이 그딴 소릴 하냐며

쓸개에 있는 건 돌이지!!!라고 버럭하셨다.

...교수님?... 왜 저에게?....)




충수염이 의심된다는 회신을 받은 뒤 외과에 호출했고

인턴 선생님이 환자 확인을 하러 왔는데 인턴 선생님이

나에게 한 질문은

또 다른 느낌의 충격을 줬다.


나에게 수술을 할 건지 말 건지를 물었기 때문에.


보통의 상식으로도 충수염이 복막염으로까지

진행되었을 때는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당연히 의 범주가 잘못된 건가?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고

인턴 선생님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순간 얼음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인턴 선생님이 했던 말은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시 종교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모든 치료를 받지 않기로 한 건 아닌지 해서 묻는 거라고 했다.


아니라고 대답한 뒤, 일단 지금 상태로 그냥 있으면

암이 아니라 패혈증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거 아니냐 되물었더니

의사는 그제야 알았다며 입원 수속을 밟고 수술 스케줄을 잡자고 했다.


항암치료를 안 받는 것이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도

수술 여부에 대해 확인할 만큼 특이한 케이스인 건지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더 고통스럽지 않게 여생을 보내자고 선택한 것이

그렇게 특이한 경우라서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건지

씁쓸해진 순간이었다.




이렇게 수술 전 입원실에 올라가는 데까지만

응급실에서만 보낸 시간은 약 10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리고 그 10시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먹은 것은 응급실에서

제일 가까운 자판기에서 뽑은 포카리스웨트 두 캔이 전부였다.


원칙상, 응급실에 상주 가능한 보호자는 환자 1인당 1명이고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 교대는 불가했다.

이 말인즉슨 응급실에 내가 발을 들이는 순간

환자 옆을 지켜야 하는 보호자 1인은 바로 나로 고정되면서

교대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응급실에서 음식물 섭취는 할 수 없고

언제 보호자를 찾을지 모르니 자리를 꼭 지켜야 하므로

최대한 양보해봤자 15분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나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응급실에서 가까운 자판기에서 간신히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서 입원 수속을 밟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수술실로 가기 전 아주 잠깐 짬이 났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아주 잠깐만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면 안 되냐고

정말 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부탁을 했지만

순간 그들의 표정에 드리우는 낭패감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고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전화를 주면 바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부리나케 1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 잠깐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고

1층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기가 울렸다.

그 전화를 받고 왠지 모르게 울컥했지만

밥이고 나발이고 이게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운세려니 가슴에 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으며

수술실이 있다는 3층으로 향했다.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려는데

여기서 처음 알게 된 정말 엄청나고 허탈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이 가능한 사람은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뿐이라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단지 인척 관계인 며느리는 그 관계 속에 포함이 되지 않음으로.

인척 관계는 얼마든지 종료될 가능성이 있는 관계이기도 하므로.


아무리 아침부터 밤까지 포카리스웨트로 버티며 그의 침대 곁을 지킨 보호자가 며느리인 나였어도

나는 최종적으로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든 법적인 책임과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난 그에 대해 부정을 하자는 것도 아니며,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가 수술동의서에 사인할 수 없는, 법적으로 그렇게 정의된 관계라면

적어도 입원 수속이 끝날 때쯤엔 그의 직계비속

그러니까 아들이나 세 명의 딸 중 한 명이 나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게 아니었는지 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매정한 것일까.


성인이 되어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들과

미취학 상태인 우리 아들과 똑같은 자식이고

똑같이 자식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계속 시누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걸까?


돌이켜 생각할수록 내 인생에서 분통 터지는 일 TOP3에 드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결국 마취과 의사는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 본인에게

사인을 받으면 되니 환자 본인 사인을 받겠다고 했고

고령에 나이에 전신마취를 하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수술동의서에 사인이 불가한 나로서는

염려되는 내용에 대해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기에

전신 마취에 대한 내용을 더 이야기 할 수도 없었으며

수술실에 서둘러 들어가는 분들을 붙잡고 더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되는 상황이 아니기에 서둘러 수술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밤, 집으로 돌아가며

수술만 무사히 끝나면 될 거라고

이것보다 힘든 일이 이제 뭐가 더 있겠냐며

나 자신을 위로하던 당시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아직 안 끝났어 병신아'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걸 진정 난 몰랐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