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말기 암환자인 시아버지와 함께한 나의 6개월
수술이 끝난 그 날밤부터 남편은 병원에서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낮엔 내가 병실에 있다 하더라도 밤엔 남편이 보호자로 있어야 하는데
환자와 보호자 둘 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입원 수속을 할 때, 1인실로 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자 신의 한 수 였다는 것을
우리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취에서 깨어난 시아버지에게 수술 후 섬망이 왔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 하나를 고르라면 난 주저 없이 시아버지에게 섬망이 왔던 그때, 바로 그날이라고 말할 것이다.
수술이 끝난 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을 만났을 때,
수술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충수염에 대해 검색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로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겼고 염증이 심해지다 못해 파열되면서
파열된 조직과 염증은 떡처럼 엉겨 붙어있어 모두 닦아내느라
예상 시간보다 조금 더 걸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충수염은 충수돌기 입구가 막히면서 생기는데
시아버지의 경우는 암 조직이 충수돌기 입구를 막아서 생긴 충수염으로
수술한 의사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고 했다.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아 암이 계속 퍼지고 있어 이런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소화기내과 교수님과 항암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떠냐는 말도 해주었다.
수슬이 끝나고 나니 시간이 10시쯤 되었고
수술을 담당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교대를 하고 집에 오니 11시 20분쯤 된 것 같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시간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
당시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집에 가서 그저 편히 눕고 싶다는 마음뿐이었기에.
그 마음 그대로 나는 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렸고
다음날은 남편이 조금 일찍 퇴근해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술한 지 20시간 정도가
다음날 밤 8시경부터 아주 뚜렷한 섬망 증상이 나타났다.
섬망의 주요 증상으로는
생생한 환청과 환각, 불면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세 가지가 한 번에 찾아와 이틀간 계속되었고
남편도 나도 처음 겪는 일에 당황스러움을 넘어
멘탈이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 잠도 안 자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안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하며
단 한 순간도 가만히 계시려고 하지 않는 모습은 정말 무서웠다.
사실 노인환자의 전신마취 수술 후에 섬망이 오는 경우가 많고
전신 마취 자체가 환자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수술 전 마취과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때, 수면 마취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마취과 선생님께서 수술하는 동안 환자 상태를
보다 쉽게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전신마취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고
이에 나는 더는 염려되는 것에 더 질문한다거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나왔는데
그 순간이 또 내 발목을 잡고 후회하는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한 번 더 물어보기라도 했다면
섬망이라는 것에 주의 깊게 대비라도 했다면
그렇게 놀라거나 고생하는 일을 없었을 텐데 라는 후회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수면 마취를 한다고 100% 섬망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전신마취를 한다고 100% 섬망이 오는 것도 아니기에
당장 떠오르는 후회는 금방 털고 당장 눈앞에 닥쳐온
섬망 환자의 간병에 신경을 쓰다 보니
당시엔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고 보낸 것 같다.
시아버지는 침대도 휴대폰에도
온통 흙투성이에 개미가 잔뜩 있어 눕지 못하겠다며
링거와 소변줄이 꽂혀 있는 상태인데도
계속 일어나 걷겠다고 고집을 부리셨고
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힘인지 모르겠지만
성큼성큼 병실 문을 열고 나가 걷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옆 방에서 들리는 공사 소리에
시끄러워 죽겠다며 간호사를 불러 달라 하시다가
막상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여기가 어디냐 내가 누구냐 물으면
아주 정확하게 대답을 하셨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환자의 불면은 보호자의 불면이기도 하기에
남편은 출근해야 함에도 채 2-3시간도 자지 못하고
출근을 해야 했고 나는 서너 시간 넘게 시아버지를 쫓아다니다
이러다 결국 나도 옆 병실에 입원하겠다 싶어
진정제든 수면제든 약 좀 처방해달라며 의사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했고
오후 5시가 넘어서 겨우 섬망에 관한 처방제를 받을 수 있었다.
(섬망에 대한 약물은 오전~낮 시간에는 처방되지 않는다고 하며
주로 저녁~잠자기 전에 처방된다고 한다.
의사나 약사가 아니라 정확한 이유는 모르고 당시에 들었지만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약물 특성 때문인 듯)
당시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이 나는 것들은
섬망 환자의 회복을 돕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약해진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라
현재 수술로 인해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씀해주시며
80대 남자 노인 환자라면 전립선 비대증은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고
섬망이 심해져 소변줄이라고 뺄 경우 다시 꽂는데 더 큰 수고와 리스크가 있어
소변줄이나 주사를 억지로 빼려고 하는 경우 보호자가 보기엔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침대에 결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아버지 병동의 의료진은 혹시라도 시아버지가 몸에 있는 무엇이라도
빼버리진 않을까 노심초사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날, 섬망은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모든 기력을 소진한듯한 시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부르셨고
본인의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거 같다며
정리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자
갈등의 서막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