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도 모르게 아이의 한계를 정해버린다.
한계, 나도 모르게 정해져버리는 것
나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이다.
모든 분야에 대해서 딱히 재능이 두드러지는 거나 "넌 이 분야에서는 정말 탁월하구나."라고 얘기를 들을만한 일이 없었다. 정말 평범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었다.
남들이 살아가는 루트 그대로 열심히 살아온 셈이었다. 나의 모든 능력치는 평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나는 평범한 루트를 밟아온 셈이다. 그렇다고 내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 순간 열심히 후회 없이 살아왔고 지금의 내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부모님 역시 나를 키우시며 꼭 지켜왔던 철학은 내가 올바른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능력을 개발하고,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은 먹고 살기에도 빡빡한 현실에서 너무나 먼 얘기 었다. 장사로 바쁜 와중에도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시려고 피아노, 미술, 바둑 등 여러 학원을 보내셨었다. 정말 정성이셨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저 건강하고 사건사고 없이 잘 커주기만을 바라셨던 것 같다.
이렇게 살아온 내가 어느 날 문득, 경제 관련 프로를 보다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전업투자자가 딸과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이었는데, 세계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 투자 방법, 사고방식 등을 아빠가 딸에게 얘기해 주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 영상이 꽤나 인상 깊었다.
아이가 무엇인가에 호기심을 가졌을 때, 그 시그널을 놓치지 않고 더욱 발전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께 이 부분은 아쉬운 점이 있다. 부모님께서는 어린 나의 호기심에 일일이 대답해 줄 여유는 없었다.
어린 시절 어느 날,
"사람이 살려면 돈이 많은 게 중요한 것 같다."라고 부모님 앞에서 말을 한 기억이 있는데, 이때 부모님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중요하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결국 돈은 필요한 거고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야?"라고 되물었다. 부모님의 대답은 "어린 나이에 돈을 바라보지 말아라. 돈 욕심 내면 나중에 망한다."라고 나의 이야기를 자르셨었다.
그냥 일상 중에 있을 수 있는 대화이고, 교육 철학 상 인성을 더 중요시하셨으니 이런 대답은 충분히 오갈 수 있었다. 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걱정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은 "돈"이라는 개념을 다른 관점에서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집이 먹고살기 위해 장사는 모든 행위는 결국 "돈"을 위한 것이며, 돈에 대한 잘못된 욕심은 부려서는 안 되지만 이것을 "수요와 공급에 의한 자본주의"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해 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부모님께 "돈"이라는 것은 그런 이미지라기보다는 당장 삶을 영위하기 위해 수급해야 하는 수단 중 하나였을 뿐이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나는 저 대화 이후로 "돈"이라는 개념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 흥미를 잃었고 그냥 안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더욱 아쉬움을 느끼는 것인데, 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이후에도 "경제, 자본, 돈"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굳이 할 필요 없어."라고 스스로 제약을 두었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이런 나 자신을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했다.
아기의 한계, 내가 정해버릴지도 모른다.
평소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아빠가
"아빠는 바빠서 책을 못 읽지만 너는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아이에게는 그저 과제가 될 뿐인 것이고, 아빠가 "책 안 읽어도 사는데 지장 없다."라고 한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지게 될 것이다.
평소 책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는 아빠가
"아빠 책 읽는 동안 너도 읽어볼래?"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이 행동패턴에 호기심을 가지고 아빠의 모습을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게 될 것이다.
전자의 아빠는 아이가 습득하고 배울 기회를 아빠는 본인도 모르게 생각의 메커니즘을 통제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라도 아이가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아이의 가능성에 제한을 둔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감정적인 부분으로 접근해 보면 조금 더 실감이 날 수 있는 예들이 많아진다.
오은영의 부부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가정의 문제점이 아이의 성격장애 같은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대부분 아이의 성격은 부모님의 성격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았고, 부모들의 어린 시절 이혼이나 가정폭력 등, 힘들었던 시절을 겪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 나는 더 잘해야지”라는 강박이 생기기도 하고, 혹은 사랑을 받는 표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의 아이에게도 그러한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툴고 어색하게 느끼기에 아이에게 사랑, 애정 같은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그 아이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이견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법, 혹은 다투거나 싸우고 나서 화해를 하는 과정 등을 아이는 그대로 보고 배우는 것이다. 부모 스스로가 사랑스러운 대화를 하지 않는데 아이에게 그런 표현방식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은 밖에서는 그런 표현을 잘할 수 있는 아이더라도 집에서 잦은 싸움으로 분위기가 안 좋다면 이 아이는 집에서는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감정에 솔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본인의 감정에 대해 당당하다는 것을 내포한다. 단순하게 분노, 화, 짜증, 같은 감정만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사랑, 애정, 이해, 기쁨, 슬픔 같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아이에게 이어질 수 있는데
이뿐만 아니라 부모가 사는 환경, 사고방식,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 아내와 행복하게 생활하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을 아이는 보고 그대로 습득하게 될 것이다. 아이 앞이라고 해서 살던 스타일을 바꿀 순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넌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라고 말을 한들, 아이는 '보는 순간' 배워버리기 때문에 부모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습득하게 될 수 있다.
곧, 부모는 내가 가르치고 싶은 방식대로 "삶의 형태"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나는 부모님의 생활을 보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꼈을까?
나의 아이 역시 나를 보면서 똑같이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가르쳐야 할 때, 내가 모르기 때문에 아이의 가능성에 제한을 두진 않을까?
가뜩이나 배우기 힘들었던 수학의 미분적분을 보면, 세상에는 필요한 중요한 지식이지만 나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던 지식이라고 해서 아이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아이는 깨달을 수 있고 내가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아이는 도달할 수 있다.
결과는 모르지만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에게만큼은 그 '가능성'을 빼앗고 싶지 않다.
아이가 보여주지 않은 가능성의 그 끝을 믿고 끝까지 밀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