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자전거
신혼집은 신축빌라였다.
지하철도 멀지않고, 나름 조용한 둘이있기에는 나름 적당한 집이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의 짐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집 안에도, 밖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달리기를 좋아하고, 할머니가 가져다준 자전거를, 씽씽이를 (할머니는 도대체 어디서 저런것들을 구해오시는 건가...) 타고 싶어했지만 골목 밖으로만 나가도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곳에서 굳이 위험하게 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은 아이아빠도 마찬가지였는지, "아파트가 뭐가 살기 좋아?(부정적인 톤으로 읽어야 함)" 라고 묻던 사람이 "아이 키우기 좋데"라는 말을 하더니, 급기야 청약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신혼부부특별공급, 일반분양... 우여곡절끝에 당첨소식을 들은 것이 2년 반 전-. 드디어 허허벌판 위에 아파트가 지어졌고, 아이의 방과 아빠의 서재, 그리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놀이터로 가는 길이 생겼다.
할머니가 가져다주신 자전거는 초등학생들이 탈 만한 큰 자전거라, 아이가 깡총발을 해야 자전거 페달을 겨우 밟을 수 있었다. '아이가 타긴 너무 큰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골목에서 할머니가 슬슬 밀어주는 정도로만 타기는 나쁘지 않을것 같아 이사전까지는 그냥 두었다. 아이아빠와는 '이사가면 기념으로 아이에게 키에 꼭 맞는 자전거를 사주자'라는 이야기를 소곤소곤했다.
입주청소, 이삿짐센터 선정, 줄눈, 버릴 가구가와 남길 가구 정리, ... 여기에 갑작스러운 이직과 맞물린 이사는 손이 가는 일이 한 둘이 아니었고 이사와 동시에 아이의 방을 예쁘게 꾸미고 자전거를 짠!! 하고 선물하자던 계획은 첫 이사, 첫 아파트, 첫 대출, ... 이라는 복잡한 절차들이 있는 주요 우선순위 뒤로 싸그리 사라졌다.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하늘이 주신 선물인지... 이사 다음날, 아이에게 몸에 꼭 맞는 5세용 자전거가 생겼다. 건너건너 옆동에 사는 초등학생 아이가 착하게 쓴 소피 자전거, 추억이 깃든 쓸만한 물건이라 입주민 또래에게 주고싶다는 카톡이야기를 본 순간 '저요'라는 재빠른 카톡 한마디로 얻게된 자전거였다.
산책을 다녀오던 길, 옆동 자전거 주차장에서 새주인을 기다리던 자전거를 끌고왔다. 연보라색, 소피공주님이그려져 있는 자전거는, 가장 낮은 안장과 양 손잡이의 수술이 딸랑딸랑 거리고 있었다.
"짜잔~"
그다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닌데도, 아이는 자기 몸에 꼭 맞는 자전거가 생겼음에 너무도 즐거워했다.
보조바퀴가 달렸고, 자신의 발로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자전거라니... 더군다나 장난감도 엄청엄청 졸라대야 겨우 하나 얻을 수 있는 패턴을 파격적으로 깨줬으니 기분 좋을 수 밖에-
뒤뚱뒤뚱 가면서도 놀이터에 만나는 모든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누군가의 '부모'들이라 그런지 아이의 기분에 적당히 대꾸해줬다.
첫 등원길,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를,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조금 뒤뚱거릴 지언정 뒷모습이 유난히 즐거워보여서 마음이 뿌듯했다.
집도 어린이집도 친구들도 모두 바뀌는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하려나... 라는 걱정이 들었는데,
자전거 덕에 한시름 마음이 놓아지는 것 같다.
역시나 제대로 적응해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