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새들은 집으로 가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밤이 오면, 새들은 모두 집으로 간다. 새들도 모두 돌아갈 집이 있구나.
우리들은 모두 어둠이 몰려올 때, 혹은, 갑자기 비가 내릴 때 돌아갈 집을 찾는다. 그러나 어디에도 우리의 집은 없고 돌아가야만 할 곳도 없다. 철새도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이 있건만 우리는 세상의 나그네 되어, 유랑자 되어 떠돌 뿐이다. 가끔 생각해 본다. 화성에도 비가 올까. 금성에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까.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에도 따뜻한 봄날이 있을까. 서로 다른 궤도를 도는 다른 주기의 혜성과 혜성이 마주칠 가능성은. 부질없는 이 모든 것이 부질없는 그리고는 부질없다.
불면증에는 36~37도씨 정도의 너무 뜨겁지 않은 족욕이 좋다던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 족욕을 하고 따뜻한 우유도 한잔 마시고 싶다. 호텔 앞 택시 승강장에는 사람이 없다. 모두 어딘가로 돌아갔을까.
산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도,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배신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발걸음을 세상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사막을 떠돌다가 객사할지도 모른다.
택시는 올림픽 대로로 진입하고 있다. 부드러운 오렌지색 가로등이 한강을 한껏 껴안고 있었다.
‘… 하지만 그들이 내디뎠던 발걸음들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어 한 생명이 끝난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발걸음이 시작되겠지.’
쓸쓸한 눈빛으로 밖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그녀가 다가왔다.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올 거야. 세상은 눈보라로 뒤덮이고 또 다른 빙하기가 오겠지. 헐벗은 사람들은 추위 속에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리거나, 어쩌면, 미라로 발견된 시베리아의 아기 맘모스처럼 수천 년, 수 만년 후에 발견될 수도 있겠지. 넌 세상을 증오하지도 배신하지도 마.'
나는 희미하게 웃는다. 그녀의 말에 용기가 났기 때문이다. 여름밤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나는 낮 동안의 햇빛을 자양분 삼아 이 여름밤을 그리워하며 릴케의 시를 떠올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혀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으소서.
마지막 과실들이 익도록 명하시고
.
.
릴케, 「가을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베푸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여… 저에게 딱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베푸시어… 무르익게 허락하소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