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 사막

제20화 - 사막

by sooki

「한 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마주 보며 웃네」 양희은의 노래는 가슴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지금 내가 건너온 강과 살아온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1. 사막에 관한 우울한 단상


사막의 삶을 사람들은 알까. 그럼에도 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의 애환을, 사막을 떠도는 사람들은 많은 세간을 가질 수 없고 지상에서 단 한 뼘의 땅도 가져 보지 못하고 궤도를 벗어난 별처럼 배회하며 사는 것. 누군가의 가슴에 안착하지 못하고 뿌리내리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의 삶의 안정적 궤도에서 마저도 일탈한 혜성 같은 불규칙 주기의 떠돌이 별처럼 온몸으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사막이다.


니체가 그랬던가. 「세상아 너희는 오직 즐거워라. 모든 근심과 우울은 내가 짊어지고 가려니……」


2. 우울한 생각에 대한 반론


선인장의 삶을 생각한다. 사막여우의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사막을 생각하는 당신에 대해 생각한다. 사막이라 해서 모든 것이 불모와 백일의 삶은 아니다. 거기에도 생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며 희로애락이 있다.


부정을 생각하면 끝이 없으니 긍정, 생명, 창조, 생산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생각해 보면 청마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가 벌써 10년은 넘은 것 같다. 어쩌면 내 삶에는 독한 회의도 삶의 애증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예 아라비아를 생각할 자격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만이 극단에 방문하는 곳은 아닐까. 삶의 한가운데로 돌아와 그 안에서 다시 생각한다. 가고, 가고 가는 중에 길이 있을 뿐이다.


3. 합


「저 흔들리는 나뭇잎은 바람이 흔들리는 겁니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겁니까?」라는 제자의 물음에 「흔들리는 것은 나뭇잎도 바람도 아닌 네 마음이니라.」라고 말하던 6조 혜능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사막에 있는 것은 나도 너도 세상도 아닌, 다만, 마음일 뿐이다. 감옥에 있는 것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것도 오직 나의 마음일 뿐이다.


가녀린 촛불처럼 세상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건만 내가 그것을 일희일비했고 내가 세상에 보다 진실되지 못한 건 아닌지 반성해 보기로 한다. 순간, 부끄러워졌다.


사막의 선인장보다 사막여우나 비단뱀보다 못한 나 자신의 생명력과 의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열하일기의 한 구절, 요하였던가. 밤에 물소리에 놀라며 담대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던 선비가 생각났다.


4. 샛길로 빠짐


우리는 어쩌면 야성을 거세당한 채, 생명력을 거세당한 채 도시라는 정글 속에서 털 없는 원숭이로 너무 약하고 졸렬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 앞에서 우린 얼마나 가녀리고 어리석은 짐승들인가. 사막에서 그리고 광야에서 들리는 소리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지혜의 말씀을 얻는다. 그리하여 인자가 사막, 광야에서의 고행을 마치고 나오는 날, 그는 전과는 다른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따금 파미르 고원을 넘어 천축국을 혹은 천축국으로부터 불법을 찾아 혹은 전하러 오는 승려들을 생각한다. 구마라습(쿠마라지바)을 생각하고 현장을 생각하고, 혜초를 생각하며, 그 길을 떠난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을 생각한다. 비록 파미르가 사막은 아니지만 비슷한 기후를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순례도 어떤 의미에서 사막을 건너는 나그네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험난한 길이라 많은 사람이 노상에서 희생당한다고 한다. 그들이 광야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바람 속에 그리고 어둠 속에 들은 진리의 말씀은 무엇이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순례하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 길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어찌 그들에게 인간적인 두려움이나 번민이 없었으랴만 그들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우리는 이런 마음의 빛을 잃고 이런 야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고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이미, 나올 수 있는 해답을 스스로 버렸다.


5. 마무리.


지금 당신은 어느 사막에 있습니까. 지금 나는 사막에 서 있는 것일까요. 혹 길을 잃거나 헤매는 것은 아닙니까. 나에게는 묘한 끌림이 있습니다. 아니, 나만이 느끼는 감지력, 예지력이 있습니다. 당신, 혹시 힘들어 떨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참으로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요. 어려운 길에 혼자 놔둔 것 같아 정말로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 역시 두렵고 떨립니다. 사막이라는 말들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나 자신의 바보 같은 생각들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게 해 주네요.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烈士)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홀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 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유치환, 「생명의 서 '生命의 書'」


부디, 나의 미래에 아무 일없음을 진심으로,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려 기도해 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