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 고향, 오디세우스
한 사람의 귀환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를 하며 기다리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정 붙이고 살면 그것이 고향이고 그 사람이 정인이라고 말합니다. 여자도, 남자도, 언젠가는 집에 돌아올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며 세상의 유혹에 굴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여자는 그 시간 동안 남자를 기다리며 손수 물레를 돌리며 실을 짓고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낮에 만든 그 옷을 밤이 되면 다시 풀어헤치고 날이 밝으면 다시 옷을 만들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 옷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서는 여전히 소식이 없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돌아온다는 소식만 알아도 기다림이 이렇듯 절망적이지는 않았을 텐데, 야속하게도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사실, 남자는 소식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설령 가능했더라도 차마 기다리라는 말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자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젊었던 여자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돌던 남자도 백발이 허연, 초라하고 남루한 행색의 거지몰골의 나그네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는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고, 남자는 세상에 잊혀 바람의 속삭임으로만 전해질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너무 그리웠지만 바로 여자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많이 상처받고 세상을 많이 난파해 본지라, 그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고 한결같은 진실된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남자는 여자와 가장 가까운 그리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배신하고 모든 사람을 다 믿을 수 없어도 그 사람만은 자신을 버리지 않을 유일한 사람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의 외로움과 슬픔을 홀로 견뎌내며 남자를 기다린 여자는 바보 같은 짓을 한 걸까요.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하마터면 그녀를 향했을지 모를 분노와 응징의 화살은 그를 배신한 모든 사람들의 심장을 관통하고 말았습니다. 피의 학살이, 도륙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응징.
돌아왔을 때, 그의 모습은 여자가 알고 있던 자애롭고 늠름하며 지혜로운 남자가 더는 아니어서 세상을 떠도는 힘없고 늙은 음유시인의 모습이어서 그녀 역시 그를 못 알아봤을 정도였습니다. 거울을 봤었다면, 그리고 물을 마시기 위해 다가간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봤었다면 남자는 지난 고난의 세월, 난파와 표류의 세월이 자신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알았기에 그 누추한 모습으로 여자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여자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리고 너무도 많은 피를 흘리고서야 너무나 많은 고통과 기다림, 노력의 시간을 통해서야 남자는 여자에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이 행복했었는지는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타케(Ithake) 섬의 왕,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의 주인공). 여자의 이름은 페넬로페(페넬로페이아(Penelopeia)라고도 한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 20년에 달하는 남편의 트로이아 원정 중, 많은 구혼자에게 지금 짜고 있는 자수가 다 되었을 때 결혼한다고 약속하고, 낮에 짠 천을 밤에 풀어 시간을 벌면서 정절을 지켜냈다).
남자가 찾았던 유일한 사람의 이름은 둘의 외아들 텔레마코스. 남자는 집을 떠난 지 21년, 그리고 집을 향해 출발한 지 10년의 표류를 거치고서야 간신히 그의 왕국 이타카(Ithaca Island. 이오니아 해에 있는 그리스령 섬으로 케팔로니아(Cefalonia)의 북동쪽 해안에 위치하는 케팔로니아지방의 자치지역이다)로 올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오디세우스는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에 오지 못했고 또 아가멤논(아트레우스의 아들로서, 아르고스 또는 미케네의 왕. 전설에 의하면 라케다이몬의 아미클라이시(市)의 왕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역사상 실재(實在)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처럼 바람난 아내와 그의 정부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또 생각해 봅니다. 영웅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기다림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나의 귀환을 방해한 세상의 심장을 나의 화살로 꿰뚫을 수 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