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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Sep 01. 2023

시작보다 어려운 재시작

자포자기 심정 극복하기

새벽 기상을 시작하기 몇 주 전부터 쓰던 습관 일기가 있다. 하루의 각오, 하루의 느낌, 그리고 감사 일기와 투두 리스트로 구성되어 하루 한쪽을 채우는 일기인데, 보통 아침에 출근해 하루 업무를 시작하기 전 전날의 감사 일기를 쓰고, 당일의 투두 리스트와 각오 등을 기록한다.

평일은 늘 같은 루틴으로 하루 일과가 진행되다 보니 거의 빠짐없이 기록하곤 하는데, 문제는 주말이다. 일기장을 가방에서 꺼낼 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너절해진 몸뚱이를 소파에 누이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난 후, 그대로 가방을 메고 출근해 일기장을 꺼내보면, 당연히 주말 이틀의 기록은 비어 있다. 속절없이 지나간 주말의 기억은 야속하게도 기억이 희미하다. 더듬어가며 적기를 몇 번, 결국 주말의 기록을 남기는 건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던 와중 업무가 몰려 월요일부터 복기하는 과정을 놓치면 빈 페이지가 세 장이 되고, 네 장이 되기 일쑤다.

그렇게 포기해 버린 기록들이 몇 개인가! 이번만큼은 세 번 기록을 놓쳐도, 일주일 기록을 비워도 꼭 다시 시작하겠노라 결심했다. 3일의 기록을 잊어버렸다는 이유로, 앞으로 있을 30일의 기록까지 저버리기엔 너무 손해니까.


생각보다 너무 쉬운 '에라이'


전날, 첫째의 운동 방해로 인해 기껏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음에도 홧김에 운동을 단념했다. 준비운동을 거의 끝내 러닝머신에만 오르면 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소리를 지르고 첫째가 울며 둘째가 눈치를 보는 상황이 못마땅했다. "안 하고 말지 뭐!" 관두는 건 왜 이렇게 쉬운지, 그렇게 나는 새벽을 비워냈다. 그리고 나서 따라오는 감정은 '내일은 잘 해내고 싶다'가 아니라,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도 그냥 안 할래'라는 강렬한 포기 의지였다. 아이의 이른 기상이 일종의 트리거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좋은 핑곗거리가 된 것인지, 감정은 생각보다 강하게 튀었다. 난 생각했다. 차라리 잘 됐어.

3주를 그렇게 열심히 운동 습관 유지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심지어 그전에도 하루 정도 운동을 쉰 적이 있었음에도, 왜 이번엔 달랐을까? 아마,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부정적인 예측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주가 기울어지는 목요일,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시기. 가족들을 깨우면서 사달을 낼 바에는 한 시간이라도 더 자면서 평화롭게 보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의 소동은 적당한 계기가 되어 준 것이다. '그래, 저녁에 운동 좀 하면 어때?' 합리화는 이렇게 무섭고도 빠르다.


습관을 쌓아 올리던 3주의 과정을 떠올렸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매일 쓰던 글은 어떻게 마무리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가 남겼던 기록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새벽 기상을 결심했던 날, 마침내 처음으로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던 날, 스스로의 결심을 지키고 싶어 무려 새벽 4시에 일어났던 날들까지. 하나하나 뿌듯함을 가득 담아 채워 둔 기록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잘하고 있어!' '내가 이런 것까지 해냈다고!' 기록들은 한 글자 한 글자 자기 효능감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습관을 꾸준히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꼬박꼬박 적어둔 내용들이 눈에 밟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홧김에 그만둔다고? 그저 자기 아들한테 방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포기를 포기하기 위한 방법, 재정비


살면서 많은 습관들을 체화하려 노력했고, 마침내 내 것으로 만들어낸 것도 있는 반면 당연히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었다. 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각종 스케줄러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포부에 가득 찼던 다이어리들은 그렇게 앞의 몇 장을 시커멓게 태운 후 내 눈에서 사라졌다. 대부분의 원인은 그저 '하루 이틀 기록을 깜빡해서'였다. 한 장, 두 장, 많게는 일주일도 넘게 비어있는 다이어리들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태만했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날짜가 적혀 있는 다이어리들은 상태가 더 심각했다. 만년 스케줄러는 3월에 깨작거리다가도 다음 장에서 거침없이 9월을 쓸 수 있었지만, 날짜가 적혀 그마저도 속일 수 없는 다이어리들은 당당하게 6개월을 통으로 비워내기가 부끄러워 그냥 새 다이어리를 사버리기 일쑤였다.

이번 습관도 그렇게 나의 여남은 다이어리들처럼 '실패한 습관'이 되어 버리는 걸까? 한때는 새벽 4시 30분에도 일어났었지~ 하고 추억하게 되는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긍정적인 감정들!!' 그래, 내일 좀 더 효율적으로 운동에 임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나는 새벽에 마시기 위해 식탁 위에 두었던 텀블러와 이온음료를 모두 준비운동을 하던 작은 방으로 옮겼다. 마시는 물의 양이 많아지면서 아예 주전자까지 식탁 위에 올려두었는데, 아예 집에서 가장 큰 물병에다 물을 잔뜩 옮겨 담아 모두 작은 방의 미니 테이블에다 올려 두었다.

습관처럼 러닝머신 옆에서 신던 양말과 신발, 그리고 만보기 기록을 위해 늘 차던 러닝벨트까지 모두 작은 방으로 옮겼다. 아이들이 내가 거실에서 내는 소리와 불빛 때문에 일찍 인기척을 느끼는 것이라면, 그것을 차단했을 때 10분이라도 더 잘 것이라 생각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한 번 시도해 볼 만했다.

그렇게 나는 운동복, 선풍기, 조명 그리고 각종 마실 것들을 모두 적재적소의 위치에 각도까지 알맞게 맞춰 둔 다음 잠이 들었다.


마침내 재시작, 다음은 훨씬 쉬울 것이다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누구보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채비를 한 후 운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어제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아이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러닝머신의 버튼이 off 되고, 기계 소리가 잦아듦과 동시에 아이들은 다시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전날에도 몇 번이나 '다시 해? 말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락가락하던 내 감정이었다. 하지만 아예 단순히 생각해 버리니 오히려 더 쉬웠다. '그냥 하는 거야!' 그렇게 나는 다시 궤도를 되찾았다.

앞서 말했던 나의 습관일기는, 어제의 여파(?)로 또다시 하루를 뻥 비워버렸다. 새벽 운동의 실패로 의욕이 사라지는 바람에 홧김에 습관일기도 더 이상 기록을 하지 않은 것이다. 사무실로 출근한 나는, 업무에 착수하기 전 어제의 비어 있는 칸을 조심스레 채웠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얼마나 의욕적인가? 하고 묻는 체크리스트의 물음에 당당히 표시했다.

두근두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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