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청계천을 걸었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이다. 누군가 길을 묻거나 '도를 아십니까'가 붙잡기 힘들 정도로 아주 바쁜 일이 있는 것처럼 휙휙 걷는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아주 느리게 걸었다. 한 발짝을 떼는 일이 마치 지구의 모든 중력을 거스르는 일인 듯 힘겨워하면서 아주 아주 느리고 천천히.
마음이 아주 힘들었던 때에는 운동은커녕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주 짧은 거리조차 택시를 타버리고 때로는 버스를 타놓고도 내릴 힘이 없어 정류장을 지나쳐버리곤 다시 택시를 타기도 했다.
오늘도 분명 지치는 하루였고 변한 건 없지만 그때보다 조금은 튼튼해진 다리로 청계천을 걸으며 그런 나의 선택들이 체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고 걷는 동안 주저앉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운동을 하며 조금 건강해진 나는 비록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었지만 발을 떼서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왜 사람들이 국토대장정을 하거나 순례길을 걷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주인공은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발에 잘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고 거리를 걷는다. 발이 아프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고 잠시 다른 생각을 안 할 수 있으니까.
굳이 발이 아픈 신발을 신지 않아도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온전히 걷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일단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걷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걸을 수밖에 없다. 길 한복판에서 드라마 주인공 마냥 쪼그려 앉아 울고 싶다가도 그냥 울컥거리는 마음을 참으며 앞으로 무작정 나아가는 것.
이 걸을 힘조차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워놨기 때문이라고 또 한 번 운동예찬에 박차를 가해 본다. 때마침 지나가던 아저씨가 옛날 노래인듯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서 버스 정류장이 나왔을 때, 나는 겨우 잠깐을 걸었을 뿐이지만 오늘도 해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칭찬해 주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