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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Nov 04. 2019

하루에 한번씩 하는 착한 다짐이 있나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잘하기

우연한 기회에 어르신들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드리는 일을 하게 됐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는 일만큼 간단한 일이지만, 어르신들께는 절박하게 배워야 하는 학습의 영역이었다. 어르신들은 스마트폰을 배우러 오시면서도 칸이 넓은 공책과 예리하게 깎은 연필을 준비하셨고, 수업 시작 30분 전에 이미 교실을 꽉 채우고 선생들을 기다렸다. 단단히 준비하고 오신 마음을 보면 얼마나 절박했는지 보였다. 고맙고 아쉽고 또 기다린다는 인사를 듣게 되는 일이라 일정이 잡히면 피곤한 일상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달려가곤 했다.



어르신들께 뭔가를 가르쳐드리는 일은 끊임없이 인내를 필요로 했다. 카카오톡에서 사진 한 장을 보내는 게 어르신들께는 100인분 잔칫상을 차려내는 일보다 복잡했다. 친구 전화번호 하나 저장하면 한 시간 수업이 끝났다. 친구에게 문자 하나 보내는데 또 한 시간이 걸린다. 자그마한 화면에서 눌러야 할 버튼을 찾는 일이 수업시간의 절반이고, 뭉툭하고 거칠어진 손 때문에 생기는 오타를 바로잡는 일이 나머지 시간의 절반이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4남매를 척척 키워 내시던 손길이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걸 보면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이제 어떻게 해요? 어느 거 눌러요? 물으실 때마다 내 손으로 대신 눌러 드리면 쉽고 간단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텔레마케터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알려드렸다.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읽고 쓰는 법만 익히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함께 배운다. 느린 호흡이라도 또박또박 자기 글씨를 만들어가며 서툰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배우는 것도 똑같다. 손과 마음이 함께 익숙해져야 한다. 단순히 기능을 가르쳐드리는 것을 넘어서 그분들이 스마트한 세상으로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까지 함께 도와드려야 했다. 어르신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마트폰에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실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고 충분히 기다려드리는 게 선생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복지관에서 문자 보내는 방법을 배워오셨는데 어찌나 신나 하시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봉사활동을 결심했다고 하셨다. 이제 직접 가르쳐드리면 되겠네요. 누군가 추임새를 넣었더니. 안돼. 싸워 싸워.라고 하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결국 자신은 여기 와서 다른 어르신들을 가르치고 아버님은 복지관에 가서 또 다른 사람의 아들딸들에게 배우신다고 했다.


그 말에 모두들 알겠다는 듯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이해가 되면서 같이 웃고 말았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 참 슬펐다. 모르는 어르신에게 무한히 발휘되는 인내심이 엄마 앞에서는 쉽게 한계에 다다른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서툴고 실수하고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은 똑같은데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다른 어르신들의 더듬거리는 손길은 충분히 기다리고 서투름도 귀엽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내 부모 앞에서 그 마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회사에서 친절하고

친구들에게 상냥하지만

엄마에게는 까칠한 아들 딸들.

가까운 사람에게 더 잘하기.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지만

마지막까지 실천하기는 어려운 지혜.

무례함과 편안함을 혼동하지 말자.

자꾸 까먹으니까

더 자주 반성하고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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