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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Oct 24. 2021

내 감정을 바꾸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타인의 분노에 물들지 않기

대단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자리는 꽉 찼고 두세 자리 건너 한 명씩 사람들이 서 있었다.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리기 위해 일어섰다. 나는 왼쪽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안고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가 지하철 의자에 닿자마자 갑자기 검은 가방이 날아들어 내 왼쪽 팔을 쳤다. 가방은 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휴지가 가방 밖으로 튀어나왔다.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눈썹 문신을 한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옆이라고 했지만 두 자리 건너에 서 계셨다. 어쩌다 가방이 여기 떨어졌을까 생각하며 휴지를 주우려는 찰나 아주머니는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재수 없는 년이 됐다가 동물의 자식이 됐다가 애미애비 없는 고아가 됐다. 난생처음 듣는 욕에 어리둥절했다. 아니 가방을 맞은 건 난데, 아주머니가 왜 화를 내고 계신 거지?


나는 그때서야 가방이 떨어진게 아니라 아주머니가 가방을 던졌다는 걸 알았다. 아주머니는 내 앞에 자리가 나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름 날렵하게 가방을 던졌는데 실패! 아주머니는 마치 자기 자리를 뺏긴 것처럼 억울해하며 지하철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같이 소리를 질러야 하나 무시를 해야 하나 그냥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야 하나. 처음 당하는 상황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멀뚱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주머니는 내 앞으로 와서 가방을 줍더니 민망했는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아주머니는 내리면서까지 혼잣말에 가까운 욕설을 퍼부었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아주머니는 자리를 떴지만 나의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 저녁,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는 게 억울했다. 내가 왜 그런 욕을 듣고 있어야 했나. 맞서 싸우기라도 할 걸. 말이 안 통하면 싸대기라도 한 대 때렸어야지. 온갖 상상을 하면서도 그 어떤 것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더 화가 났다. 내가 그깟 지나가는 사람 때문에 온통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하자 분노 게이지는 더욱 올라갔다. 나는 아주머니의 분노에 뒤늦게 말려들고 말았다. 지하철에서 일어난 그 일보다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점점 힘들었다. 어떻게든 이 분노를 잠재워야 했다. 나는 일어나 물을 한잔 마셨다. 




마음은 쉽게 물든다. 이유 없이 거는 시비나 분노는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이 난데없이 나에게 짜증을 내면 내 목소리도 같이 커진다. 지나가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내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 뒤통수를 세게 친다면, 그래 내 머리 스타일이 이상하지 하면서 수긍하며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고 니가 뭔데 왜 지랄이야? 한마디 하면 두 사람은 즉시 1라운드가 시작된다. 이러나 저러나 고약한 상황이다.


쓸데 없는 사람들에게 감정이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바꾸는 사람을 정해두어야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싸우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다른 사람의 분노에 쉽게 휘말리지 않도록 마음 채비를 야무지게 해 두어야겠다. 내 감정을 바꾸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들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내 감정을 소비하려고 한다.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와 짜증을 닥치는 대로 쏟아내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철저히 무시하고 넘어가야 한다. 끝까지 끝까지 무시해야 한다. 그런 자신에게 기특하다고 말해줘야 한다. 이건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무책임한 분노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누군가 이유 없는 시비를 걸 때마다 생각한다. 저 사람이 내 감정을 바꿀 만큼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인가. 비로소 내 감정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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