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랑말랑 Nov 28. 2019

나는 왜 그토록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자기계발서를 읽는 마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잠은 오랫동안 나의 콤플렉스였다. 자도 자도 졸렸고 아침잠은 늘 부족했다. 내 방은 동쪽과 남쪽으로 창이 나 있어서 날이 밝자마자 해가 환히 들어왔다. 주말이면 동쪽 창문에서 비치던 해가 남쪽 창문으로 옮겨올 때까지 이불을 둘둘 말아 계속 잤다. 엄마는 내 얼굴에 있는 주근깨를 볼 때마다 잠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파리가 얼굴에 앉아 똥을 싸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자서 파리똥이 얼굴에 그대로 굳어 주근깨가 된 거라고. 멜라닌 색소를 몰랐던 어린시절, 나는 정말 그런 줄 알고 잠결에 파리가 웽웽거리는 소리가 나면 내 얼굴에 앉아 똥을 쌀까 싶어 손을 허공에 휘젓곤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잤다.


내가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유행한 아침형 인간은 나에게 재앙과 같았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의 아이콘처럼 온 세상에서 쏟아져 나왔다. 남들보다 빠르게 하루를 열고 아침시간만 잘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렇다면 나도? 말도 안 되는 희망에 부풀어 아침형 인간에 도전했다. 아무런 준비운동 없이도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건 성공했다. 지칠 줄 모르고 울려 대는 알람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침 8시가 되면 다시 졸렸다. 잠은 내 아침만이 아니라 내 하루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아무리 커피를 들이부어도 헤드뱅잉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모자란 잠은 점점 누적되어 하루 종일 잠 속을 걷는 것처럼 몽롱했다.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온통 꾸벅꾸벅으로 기억된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침형 인간이 되지 못함을 자책하며 살았다. 단순히 잠이 많은 것을 넘어서 남들 다 하는 일을 나만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 걸까. 나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그때 나는 내가 잘못 만들어진 사람인 줄 알았다. 사소하게 넘어지고 실패할 때마다 잠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게으르다는 말은 마음속 주근깨가 되어 지워지지 않았다.



잠이 많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다. 신발 사이즈가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잠이 많은 사람이 있고 적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저녁 늦게까지 집중력 있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푹 자고 일어나면 오후의 집중력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나에게 맞지 않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옷을 입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내 머리를 쥐어박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잘못하지도 않은 잘못을 여럿 짓고 살았다. 어디선가 보고 배운 좋은 습관이나 이론을 따라 하다가 실패하면 나를 다그치곤 했다. 성공으로 가는 뻔한 길이 보이는데도 그 길을 따라 걷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유명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이제는 나에게 맞지 않는 지도를 손에 들고 동동거리지 않는다. 내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는 이론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따르는 길이 아니라 내 몸이 받아들이고 마음이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휩쓸려 다니기를 멈추고 나서야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생에는 수많은 지도가 있다. 이럴 땐 이렇게라는 딱딱 떨어지는 전문가의 조언부터 나는 이렇더라 라는 경험담, 대다수의 동향을 이야기하는 실험 상황까지. 좋은 곳을 가는 지도는 모두 공개되어 있고, 원하기만 하면 어떤 지도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다. 우리에게 보물지도가 쥐어졌을 때 지도를 따라나서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이 지도가 나를 위한 지도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유행하는 자기 계발서와 에세이들을 무작정 따라 하면서 나는 왜 안될까 자책하며 스스로 생채기 내는 어리석은 반복을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런던을 여행하면서

뉴욕 지도를 따라 걸을 수는 없다.

딸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포도를 키울 수는 없다.

꼭 이루고 싶었으나

실패했던 자기계발서의 이론을 살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해진다.

어쩌면,,,

나를 위한 지도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전 06화 마지막 선물은 어떤게 좋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