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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Dec 03. 2019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하루, 무엇을 할까?

생일을 맞이하는 자세

내 생일은 5월 4일이다. 그렇다. 어린이날 전날이다. (내 생일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 첫 문장을 ‘내 생일은 휴일 전날이다.’라고 쓰고 보니 뒷이야기가 자꾸 엉켜서 그냥 날짜를 공개하기로 했다. 어차피 많이 남았으니 그때쯤 되면 다들 잊겠지. 생각하며.) 보통 크리스마스 전날 다음날, 어린이날 전날 다음날이 생일인 아이들은 억울하다. 선물이든 파티든 휴일과 뭉뚱그려져서 하나로 퉁치게 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꼭 내 생일상을 따로 차려주셨고, 어린이날 다 같이 즐기는 선물 말고 내 생일을 위한 선물도 따로 챙겨주셨다. 그래서 나는 내 생일이 휴일에 묻어가는 날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때는 생일이 휴일 전날인 게 좋았다. 왁자지껄하게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케이크를 자르고 얼굴에 뿌렸다. 잔이 넘치도록 맥주를 따라 놓고 축하를 받았다. 내 생일날에는 나를 위해 모인 사람들 모두가 떡이 됐다. 다음 날이 휴일이었으니까. 자신이 어린이도 아니고, 데리고 나가야 할 어린이도 없는 대학생들에게 어린이날은 그저 휴일일 뿐이었다. 그래서 늘 내 생일날 마신 술이 신성한 어린이날까지 흘러들어 가곤 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내 생일날에는 무조건 휴가를 받았다. 부처님 오신 날, 성탄절에는 온 세상이 휴일인데 말랑말랑님 오신 날에는 나 혼자라도 쉬어야지. 안 그래? 내 생일이 월요일이나 목요일일 때가 가장 좋았다. 내 생일날 하루 휴가를 받으면 연속 4일을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석가탄신일이 어린이날 근처에 있는 해에는 자연스럽게 황금연휴가 됐다. 내 생일 주간에 근로자의 날, 석가탄신일, 어린이날이 3단 콤보로 들어 있던 적도 있었다.


생일을 보내는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아무와도 약속을 잡지 않고 혼자 생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해 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축하를 받고 싶지 않았다. 하루가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흥청망청 보내는 건 더더욱 싫었다. 대신에 해 보고 싶었던 일들을 나에게 선물해주기로 했다. 매해 생일날 나는 다른 배경 위에서 나를 조용히 가라앉힌다. 낮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평일 오후 시커먼 공연장에 앉아 있기도 하고, 모르는 동네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칠 때도 있다. 어디에 있건 사람들에게 둘려 싸여 있는 게 일상이다 보니 조용히 혼자 머무는 시간이 선물이자 특별한 이벤트가 된다. 평소에도 잘하고 싶지만 생일날은 나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



새로운 달력을 받으면 사람들은 휴일을 세기 시작한다. 휴일과 휴가를 엮어 어떻게 놀러 다니면 좋을지 생각하는 기쁨에 설렌다. 나는 달력에서 가장 먼저 내 생일을 찾아보고, 휴가 계획 첫자리는 늘 내 생일을 올려놓는다. 그날을 위해 나머지 모든 스케줄을 조정한다. 365일 중 하루 정도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대로 써도 되지 않을까? 내 생일이잖아!



매해 1월 1일, 매월 1일, 혹은 매주 월요일.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시작의 의미가 있는 날들이 있다.

나에게는 생일이 그런 날이다.

생일날 바라는 소원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 같은 좋은 느낌.

생일은 다시 태어나기 좋다.

내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 바로 그 날.

동그란 출발점에 서서 운동화 끈을 바짝 동여매 본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나에게 조용히 묻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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