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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n 28. 2023

ADHD와 다림질.


나는 워낙부터 ADHD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진료를 보는 일은, 환자분이 순서대로 진료실에 방문하고 나는 그저 내 앞의 환자분의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니 조직화라던가 선택적 집중이라고 할 것이 없다. 다행히 정신과 진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환자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는 터라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은 다소 산만했다. 똑바로 앉아있지 못하고 의자 앞 두 발을 들고 불안정한 자세로 수업을 들어 지적을 받는다거나, 학교 자율학습 독서실에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차라리 바닥에 누워 자습을 하던 일. 한 과목씩 공부를 하다 보면 금방 질려서, 차라리 20분마다 과목을 바꿔가며 공부하던 일. 마음이 급해 문제를 빨리 풀고자 하다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잦아서, 시간을 스톱워치로 배분해서 한문제에 90초씩은 꼭 채우려고 연습했던 일 들이 떠오른다.


요즘 신경 쓰는 일이 많아 머리와 마음이 복잡하다. 꽉 끼어 앞으로도 뒤로도 오고 가지 못하는 주차장의 자동차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때로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이렇게 힘들면 잠깐 약을 먹어볼까 고민하다 거의 한 달간 쌓인 다림질을 했다. 다림질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워낙 다림질을 참 좋아했던 것도 떠오르고, 또 막막하게만 느끼던 것에 대해서도 조금씩 정리가 되어 숨통이 트이기도 했다. 다림질을 처음 시작했던 것은 자취를 하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병원에서 실습을 나가려면 셔츠와 타이와 구두가 필요했다. 원룸의 공용 세탁기에서 빨래를 하고, 아무리 옷걸이에 잘 걸어 건조한대도 셔츠는 다림질을 해야 했다. 집에서 받은 다리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유튜브를 보고 여러 번 따라 했다. 처음엔 꽤나 까다롭기도 하고 귀찮게도 느껴졌는데 반복하다 보니 숙달이 되고 어느새 내가 다림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림질하는 때의 특유의 냄새가 좋았다. 또 구겨진 옷이 펴지면서 내 마음도 같이 펴지는듯했다.


병원 실습 기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잘 안되고 불안했다. 내 첫 실습은 마이너과의 한 특수 치료실이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난 전공의 선생님은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질문했다. 내가 쭈뼛대며 대답하지 못하자 그 선생님은 내게 악담을 퍼부었다. 너같이 멍청한 의사에게 너희 부모님이 진료받는다고 생각해 보라며, 그것은 아주 큰 잘못이고, 지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위해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고 했던 것 같다. 해당 질문은 너무도 세세해서 학생 수준이 아닌 해당과의 전문의 시험에나 나올 내용이었다. 나는 집단에서 제법 좋은 평을 들어오던 편이었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나 모욕적이었던 탓에 10년도 넘은 지금도 그 선생님이 내게 물었던 질문과 대답을 기억하고 있다. 그 선생님의 반응은 지금 생각해도 과한 편이었지만 그런 일들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옷을 다렸던 것이 아니었까. 이 구김 없는 셔츠가 나의 갑옷은 아니지만 셔츠를 입는 하루 동안 별일 없기를 기원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취미가 자주 바뀌는 편이다. 최근의 취미로 달리기와 테니스와 수영과 사진, 글쓰기, RC 비행기, 클래식 기타, 식물 가꾸기 등이 있다. 한두 달 달리기에 빠졌다가 그다음엔 달리기는 보고 싶지 않고 독서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또 한 달 정도 책을 읽는데 몰두하다 사진 찍기에 몰두하고, 어느 때엔 글쓰기에 몰두하게 된다. 여러 가지 취미를 얕게 경험하는 편이다 보니 뭐 하나 깊게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없다. 그중엔 다만 사진을 오래 찍었는데 사진을 지속적으로 찍은 것은 아니고, 10대부터 20여 년간 일 년에 한두 달가량 사진에 빠지게 되는 일정한 주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는데 진득하게 하나를 완성하지 못할까 고민하는 때도 있었는데. 요즘엔 그냥 그것이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편이다. 왠지 마음이 한데 차분히 있으면 그건 또 내 모습이 아닐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하나의 취미를 오랫동안 깊게 몰두할 수는 없지만 대신 얕아도 다채로운 취미들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행히도 나의 증상이 아주 심하지 않기도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대처하고 보완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모든 것에 나쁜 면만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것이 불안이든, 강박이든 주의력이든. 생리적인 의미가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과도한 건강에 대한 염려가 지속되어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을 건강염려증이라고 하지만, 적당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그 사람이 자신의 건강관리를 하게 되는 것처럼, 불안이든, 주의력이든, 우울이든 하는 것이 다른 어떤 필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자 한다.


ADHD는 요즘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그나마 잘 받아들일 만한 진단이 된 것 같다. 많은 분들은 마치 정상이지만 더 예쁜 외모를 갖고자 성형수술을 하듯이 ADHD 진단에 대해서는 크게 부정적 낙인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는 것 같다. 같은 병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가 중요한데, 어떤 분은 본인에게 선천적인 혹은 유전적인 정신적 결함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았다고 느끼시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 진단 이후 매우 낙담하고 괴로워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 진단 이후 꼭 병의 생리적 의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하는 편이다 ADHD의 경우 학교에 앉아 일정 시간 앉아서 생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이 수업을 방해하는 질환으로 여겨지지만, 원시시대에 함께 달려나가 수렵을 해야만 했을 때엔 병이 아니었을 것이다. 꼭 남과 같거나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마음이 좀 더 편안할 것 같다. 적당히 혹은 충분히 괜찮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도 있는 굿이너프 정신건강의학과로 의원의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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