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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MYO Nov 08. 2018

day 56. 미국에서 병원에 가게 될 줄이야..

미국 의료 시스템 체험기

겨우 감기에서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오나 했건만.. 알시노와 산책을 나갈 때부터 코와 입 주변의 느낌이 좀 이상했다. 

에이.. 설마.. 

갑자기 지난 악몽이 떠오른다.


아침부터 코와 입 주변이 간질간질하고 느낌이 이상하더니 저녁 무렵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것이다. 하필 메르스가 창궐하여 모든 사람들이 병원을 멀리하던 시기라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아 급하게 응급실을 찾았었다. 메르스 덕분에 의사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자에 앉아 링거를 맞게 해주었는데, 난 바늘을 꼽은지 5분도 되지 않아 기절했다.


몇 시간 만에 깨어났더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다른 의사로부터 정말 요단강을 건널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급성 알레르기 증상이었단다. 평생 알레르기라고 겪어 본 적이 없기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필 그때와 느낌이 비슷해서 수시로 거울을 통해 얼굴을 확인하고, 스스로 상태를 확인하느라 밤새 뒤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입술에 가득 포진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이다! 

밖으로 포진이 올라온 거면 급성 알레르기 반응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헤르페스 바이러스인 것 같았다. 별거 아닌 듯하지만 혹시 몰라 한국에서 챙겨 온 연고를 바르고, 알코올 솜으로 열심히 소독도 했다. 하루에도 손을 수 십 번씩 씻고, 수건도 한번 쓰면 바로 교체했다. 

그런데...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 거다.


뭔가 느낌이 쌔하여.. 가족들한테 약을 보내달라고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입술에서 시작된 포진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입 주변으로, 코로, 볼로, 귀로, 손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내 피부가 남들과 같지 않음을 잘 알면서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거다. 외국 친구들은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내 얼굴인데도 너무 징그러워서 거울을 보기 싫을 정도로 퉁퉁 붓고 진물이 나고 간지럽고, 심지어 아팠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계속 기운이 없고 잠이 오는데, 막상 누우면 간지럽고 아파서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빠른 속도로 상태가 악화되니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했다. 그때 불현듯 여기 올 때 클리블랜드 재단에서 가입해준 보험에 사인을 했던 것이 기억나서 담당자인 조슈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틀 전에 내 얼굴을 보고 미팅을 했던 당사자. 본인의 동생도 가끔 그런다며, 금방 나을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더랬다. (하지만 내 피부가 남들 같지 않은 게 문제..) 전화 통화를 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그는 오늘 아침 병원에 가기 위해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사실 어제 통화할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는데.. 여기서 의사를 만날 수 있다니! 

기쁜 마음으로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의사를 만나러 갔다.

실내는 아늑했고, 조슈아가 말한 대로 많은 서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A4 앞, 뒤로 빈칸을 가득 채웠다. 그가 없었다면 그 칸을 다 채우다가 진이 빠졌을 듯하다. 만약 영어를 못하면? 이걸 진정 아파서 온 사람에게 받는 서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채울 칸이 많았다.

다행히 환자는 많지 않아서 바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는데 간호사가 작은방으로 안내해주더니 내 상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이미 증상과 병명을 인터넷으로 모두 공부해간 터라 대화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5분쯤 지나니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면역력이 약해지면 생기는 Cold Sore(영미권에서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하면 성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 Cold Sore라고 부른다고 함) 증상이 맞는데, 증상이 심하다며 정말 푹 쉬어야 한단다. '모든 병이 그렇지요..'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모든 의사들이 쉬어야 한다고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하지만, 넌 지금 정말 온몸으로 번질 기세라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진짜 쉬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여기서 사냐고 묻길래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의 동생이 서울에서 살고 있다며, 보다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며 일주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으면 꼭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의사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걱정이었는데, 친절한 의사를 만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처방전을 받았고, 이제 이걸 들고 약국에 가면 되냐고 하니 가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될 거란다.

(엥? 한 시간이나?? 왜...?)

시스템에서 처리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단다. (하.. 이 나라는 뭐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럼 나는 건너편에 있는 약국에서 기다리느니, 집 근처 약국에 가면 어떻겠냐고 조슈아에게 물었다. 그는 한 시에 미팅이 있었고 아침부터 나를 병원에 데리고 온 그가 미팅까지 미루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집 근처라면 약을 받아서 혼자 우버를 타고 갈 수도 있으니 그게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도 그게 좋을 것 같다며 집 근처에 있는 CVS에 갔고, 처방전을 보여줬고, 가격표를 받았는데 연고가 무려 935달러란다. 


뭐라고..?

영어를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다. 오늘 환율 기준으로 104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아무리 내 보험으로 커버가 되지 않아도 그렇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나?

미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지겹도록 들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건 너무 한다 싶다. 내가 가도 된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같이 있어준 조슈아는 보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리사(Lisa)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원래 약을 받기로 했던 병원 건너편에 있는 Walgreens로 가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이유는 물을 기운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열도 있고 몸이 좋지 않은데,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 가만히 서 있기도 힘이 들었다.

Walgreens까지 나를 데려다준 조슈아는 미팅을 하기 위해 떠났고, 리사는 우선 약의 가격을 다시 체크해보자고 했다.

어라? 이번엔 450달러란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냐고 물으니, 용량이 다를 수도 있단다. 시스템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대체 뭐라는 건지..)


자신의 보스인 릴리안과 통화한 조슈아는 떠나기 전에 모든 비용은 클리블랜드 재단에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눈뜨고 코 배인다더니,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지 않았다.


리사는 차분하게 혹시 대용할 만한 연고가 있냐고 물었고 약국 직원은 연고는 없지만(대체 얼마나 특별한 약이길래..?!), 먹는 약은 훨씬 저렴할 거라고 알려줬다.


우리는 다시 의사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결같이 친절했고 리사는 내가 여기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먹는 약을 새로 처방해주었고, 시중에서 판매하는 연고 중에 가려운 증상을 없애주고 보습을 해주는 연고를 추천해주었다.


결국 나는 10일 치 먹는 약을 받았고, 그 약은 단돈 23.99달러. 연고는 6.99달러.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아무리 보험 처리가 되지 않는 약이라도, 피부 연고 하나에 935 달러나 하는 건지..

갑자기 다른 약국에서는 왜 450달러가 되는 건지..

100~200달러쯤 될 거라던 먹는 약은 어떻게 23.99달러 밖에 하지 않는 건지..

이걸 먹으면 낫긴 하는 건지..


초기에 병원에 갔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지금은 너무 심해져서 4일 내내 잠도 못 자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에만 있으니 우울증에 걸릴 지경인데 약 하나 사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난생처음으로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미팅까지 취소해가면서 옆에서 도와주던 조슈아, 건강이 우선이라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던 릴리안, 동생이 서울에 있다며 친절하게 대해줬던 의사,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며 한국과 다른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던 리사. Walgreens의 계산대에 있던 어린 흑인 소녀까지 귀에도 잊지 말고 약을 바르라며,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을 안젤리카와 알시노는 내 상황을 체크하고 필요한 건 없는지 묻느라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자신의 집에 와 있어도 된다고 여러 번 말해주었지만, 절대 그러지 않을 것임을 이미 파악한 말라즈는 집까지 찾아와서 얼굴을 보고 갔다.


이 지경이 된 덕분에 미국에서 병원까지 간 건 최악이지만, 이 와중에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그들의 위로가 마음으로 전해져 또 행복하다.

참,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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