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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MYO Nov 23. 2018

day 60. 악순환 (Vicious Cycle)

모든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

9월에 클리블랜드에 온 뒤로, 우리가 한 일은 다양한 기관 및 조직과 만나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클리블랜드의 문제에 대해 파악하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다.

생각보다 문제가 너무 많아서...

푸드 사막, 비만 등으로 인한 건강 문제, 물 오염 문제, 높은 범죄율, 총으로 인한 범죄, 오래된 집에 칠해져 있는 페인트로 인한 납중독 등 각종 문제점을 알게 될 때마다 포스트잇에 키워드를 써서 벽 한쪽에 붙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1. 포스트잇 한 장에, 한 가지의 키워드를 써서 벽에 붙이고,

2. 시간이 날 때마다 키워드들을 보완하고,

3. 어느 정도 채워졌다 싶으면 그룹핑을 하면서 카테고리를 구분하기 시작

하기에 여기서도 같은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룹핑을 하기 위해 포스트잇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다 보니, 결국 모든 문제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지난 2달 동안 파악한 사실들을 정리해보면,


1. 사회 빈곤층은 좋지 않은 환경에 산다.


2. 다섯 집에 하나씩 빈 집이 있고,


3. 기본적인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마트조차 멀다. 이런 곳을 푸드 사막이라 부른다. 클리블랜드에는 푸드 사막에 해당하는 지역이 많은데, 70% 정도가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4. 이들은 신선한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하는 대신 패스트푸드나 레트로트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5. 당연히 비만율이 상당히 높다. (사회 빈곤층은 일반적으로 저체중인 경우가 많은데, 비만율이 높은 건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경우라고 한다.)


6. 비만율이 높은 만큼 심장 마비 등의 질병이 발병할 확률이 높고, 그 외에 다른 질병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7. 사람들은 점점 병들고,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다.


8. 직업을 잃게 되고 수입은 줄게 되며, 이런 가족의 경우 범죄 발생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9. 사회 빈곤층은 500달러의 보석금이 없어 몇 년씩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10. 어린 학생들의 경우 공부할 기회를 영영 잃게 되기도 한다.


11. 작은 범죄라도 감옥에 다녀오게 되면 취업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하고,


12. 가난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게 되면서 모든 악순환이 쳇바퀴 돌듯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가난이 사회적으로 대물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범죄율은 치솟고, 클리블랜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1999년부터 가파른 속도로 줄고 있다. 사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모든 나라에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을 테지만 클리블랜드만의 몇 가지 특이한 상황들을 살펴보자면,


1. 높은 범죄율

미국에서 7번째로 위험한 도시라는 클리블랜드. 클리블랜드의 범죄율은 오하이오 주의 평균보다 141% 높고, 폭력적인 범죄는 443% 더 높으며,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빈곤으로 인한 범죄이다. 여기서 일어나는 사건이 해결될 확률은 5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2. 납 중독 문제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인 경우가 많은데, 이 오래된 집에 칠해져 있는 오래된 페인트에 납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집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납 중독이 된다. 중독에 취약한 어린아이들은 심한 경우,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의 아이가 점점 더 심하게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할 여건이 되지 않아 계속 같은 집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도 일 년에 400명의 아이들이 납에 중독되고 있으며 시 당국은 이를 묵과하고 있다고 한다.


3. 물 오염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오래된 지역의 오래된 수도관으로 인한 수질 오염 문제가 발견되어 몇 년 전에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의 수도 관리국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발표만 이어오고 있다. 다만, 몇몇 단체들은 테스트한 표본이 너무 적다는 점, 실제로 테스트를 위한 키트를 보내도 삶의 여유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그 테스트에 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결국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의 표본만 모이게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몇몇 다른 시처럼 테스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료 키트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시 당국은 계속 거부 중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여기 왔을 때, 한국에서 가져온 녹차의 맛이 이상해서 모두 버린 경험이 있다. 이후 한국 소포로 받은 라면을 끓였다가 맛만 보고 모두 버린 경험이 있는데, 맛이 이상했던 이유는 바로 수돗물 때문이었다! 수돗물에서 나는 특이한 향과 맛이 라면의 맛까지 못 먹을 정도로 바꾼 것이다. 그다음부턴 파스타 면을 삶을 때에도 생수를 쓴다. 성분 분석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괜찮다는 말을.. 솔직히 믿을 수가 없다.


4. 엉망진창인 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는 사고가 날 정도로 망가진 도로조차 정비하지 않는다. 세금을 적게 낸 곳이라 정비할 비용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5분만 가면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지역인데, 그곳은 사고의 위험이 있을 정도로 도로가 엉망이다. 짧은 비명을 2분의 한 번씩 지르게 된다. 가만히 차 안에 앉아 있는데, 놀이동산에 온 기분이다. 물론 평지다. 반대로 5분만 가면 미국에서 손꼽히는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과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이 있는 곳이 나오는데, 그쪽은 길이 아주 잘 닦여 있다.


오른쪽으로 20분 정도 더 가면 아주 부유한 지역이 나오는데, 그쪽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한다. 사회적 빈곤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지나가기 싫어하는, (혹은 무서워하는) 그들을 위해 병원부터 그 지역까지 길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런 시 당국이 납중독에 걸리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 방안을 만들 생각은 없나 보다. 왜? 그들은 세금을 적게 냈으니까.


5. 신선한 재료를 찾을 수가 없다.

마트도 많이 없지만 마트에 가도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다. 마트에서 사 올 때부터 야채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더 이상한 건, 야채는 며칠만 지나면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녹아내기 일쑤고, 우유 등의 일부 제품은 유통 기한도 길어도 너무 길다. 포도나 사과는... 썩질 않는다. 한국 과일과 비교하면 썩기까지의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길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팠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음식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선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받기 힘들어 보인다. 이런 생각을 Creative Fusion 2018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Vicious Cycle 이미지와 함께 설명했더니 그들은 이렇게 정리되어 있는 이미지는 처음 본다며 흥미로워했다. (당연한 얘기를 흥미로워해서 내가 놀랄 정도로) 이 곳에 거주하면서 매일매일 악순환의 쳇바퀴에 갇혀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렇게 시각화된 이미지를 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라?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나니, 정식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이 이미지를 붙여 놓고 Vicious Cycle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포토그래퍼인 안젤리카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새로 찍고, 출력용 이미지도 새로 만들었다. (물론, 이 이미지 한 장 출력하기도 쉽진 않았다.. *아래 포스팅 참고)


비디오를 촬영해줄 사람을 섭외하고, 질문지를 만들고, 인터뷰 장소에 사전 답사도 다녀왔다. 과연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내가 다 알아들을 수는 있을지, 준비를 하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동시에 약간 설레기도 한다.


부디 인터뷰가 무사히 끝나길 바라며!

아자아자 파이팅!!



이전 15화 day 57. 미국에서 병원에 가게 될 줄이야..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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