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signer MYO Nov 20. 2018

day 57. 미국에서 병원에 가게 될 줄이야.. 2탄

미국 의료 시스템 체험기 02

’미국에서 병원에 가게 될 줄이야..’ 2탄을 쓰게 될 줄이야...

마지막 포스팅을 확인해보니 딱 10일 전이다.

지난 포스팅에 '약을 먹으면 낫긴 하는 건지..'라고 썼지만, 그땐 당연히 금방 나을 줄 알았다.

일말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도 의사가 말한 설마가 사실이 될까 봐, 이 끔찍한 포진이 얼굴 전체로 번지거나 몸으로 번질까 싶어 빨리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손만 다아도 다른 곳으로 번질 수 있다기에 매일 아침 침구를 세탁하고, 시간 맞춰 약을 먹고, 시간마다 피부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입술이 퉁퉁 붓고 진물이 나고 온몸이 아픈 상황이라 식욕도 없었지만, 약을 먹어야 하기에 고구마를 굽고, 계란을 삶고, 생 야채를 씹어 먹으면서 비타민까지 종류별로 섭취했다.


그럼에도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발진은 점점 심해져서 볼로, 귀로, 목으로, 손으로, 온몸으로 점덤 더 번져 갔고 얼굴에선 하루 종일 열이 났다. 계속 간지럽고, 따갑고, 진물이 나던 얼굴은 전체적으로 점점 더 풍선처럼 붓기 시작했다. 행여 한국에서처럼 숨을 쉬기 힘들거나 갑자기 더 붓진 않는지 스스로 확인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고, 밤새 얼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급기야 5일째 되던 날 아침, 얼굴이 너무 부어서 왼쪽 눈은 떠지지도 않았다.


설탕을 빌리러 왔다가 내 얼굴을 본 안젤리카는, 본인도 심한 알레르기가 있다며 이건 더 이상 습진이 아니고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단다. 그러면서 넌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며, 드본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에 드본타는 집으로 와주었고, 굳이 따라오겠다는 안젤리카는 집에 두고 드본타와 병원으로 향했다.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만난 의사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알레르기 반응이 같다며 숨쉬기가 불편하진 않은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은 없는지 물었다. 다행히 숨을 쉬는덴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국에서도 급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위험했던 적이 있어서 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하니, 의사의 얼굴은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30여 분의 대화 끝에(Urgent Hospital의 문제는 같은 의사를 만날 수 없다는 거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녀는 내가 일주일 동안 열심히 먹은 약 혹은 열심히 바른 연고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인 것 같다며 일단 급하니 주사를 맞고 다른 약을 먹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베나드릴을 마시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간호사가 10분마다 들어와서 확인을 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금세 부기가 가라앉으면서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베나드릴(Benadryl)은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일반의약품으로 먹는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다. 알약, 물약, 연고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의사는 이제 집에 가도 되지만, 오늘 밤에 다시 알레르기 반응이 올 수도 있고 그럼 정말 위험해질 수 있으니 에피펜을 처방하겠다고 했다.

에피펜은 주사 놓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이 응급 상황애서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올 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미리 용량이 정해진 주사액( 0.23-0.37mL)을 스스로 허벅지 바깥쪽 피부 위에 꽉 찔러 넣음으로써 약을 투여하여 응급 상황을 넘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들어도 봤고 본 적도 있지만,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현재 기도가 부은 것은 아니니 괜찮을 것 같다고 했지만, 의사는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지금 너는 스스로를 구해야 한단다.


여기서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더라도 너는 얼마나 빨리 치료를 받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숨을 쉬기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허벅지에 주사를 놓아야 한다고 했다.(망설이면 안 되는다는 말을 7번은 한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약을 처방받고, 4시간 만에 병원에서 나왔다. 다행히 나올 때 얼굴은 올 때보다 많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약국에 갔는데.. 에피펜이 없단다.

알고 보니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에피펜을 남용한다는 이유를 얼마 전부터 가격을 미친 듯이 올렸단다.

하루아침에 50달러였던 약이 400달러가 되었다나. (놀랄 기운도 없건만..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은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다.) 


어쨌든 가격이 오른 이후로 사는 사람이 적어지면서 에피펜이 없는 약국이 많아졌단다.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온 조슈아는 오는 동안 에피펜을 갖고 있는 약국을 찾았다며, 나를 자신의 차에 태워 병원에서 40분가량 떨어진 곳으로 데려갔다. (도대체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대체 이미 상자에 곱게 포장되어서 입고된 에피펜을 받는데, 왜 기다려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역시나 또 30분을 기다려서 겨우 에피펜을 받아 집에 왔다. 분명히 낮에 집을 나섰는데, 캄캄한 밤이 되었다.


집에 와서 한참을 고민하다 안젤리카와 알시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밤에 혹시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면, 내가 대답이 없어도 방에 와줄래? 문은 열어 놓을게. 혹시 몰라서 에피펜은 침대 옆에 두고 잘 거야.'


문자를 보내자마자 둘을 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정말 3분도 안 걸린 듯..) 

본인들도 문을 다 잠그지 않고 잘 것이며, 아이폰 음량도 가장 크게 해 놓고 잘 것이며, 우리가 밤에도 새벽에도 아침에도 너를 확인할 거니까 너는 마음 놓고 잠을 자란다. 그러면서 안젤리카는 본인은 에피펜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에게 놓아본 적도 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뭐 이때까지만 해도 잘 자고 나면 다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어찌 되었든 이유를 알았으니 이걸로 정말 끝이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절망적이진 않았다.


너무 피곤한데, 의사는 분명 약 때문에 잠이 많이 올 거라고 했는데도 전날 밤의 악몽 같은 기억 때문인지 아침이 되도록 잠들지 못했다. 해가 뜨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고 (그들은 정말 수시로 나를 확인하러 와주었다), 11시쯤 사진 촬영이 있어 밖에 있던 안젤리카한테 문자가 왔을 땐, 거울도 보지 않고 괜찮다고 답문을 보냈다. (솔직히 무슨 일이 더 생기기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거울을 봤는데...


이런...

얼굴은 어제처럼 다시 부어 있었다.


눈 주변만 전날보다 덜 부어서 잘 몰랐던 거다. (사실 얼굴에 감각이 없어진지 오래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소파에 앉아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일단 옷을 갈아입었다. 그 사이에 안젤리카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진짜 괜찮아졌어?"

"음.. 얼굴이 어제처럼 다시 부었어.. 방금 일어나서 일단 조금만 더 두고 보려고.."

문자를 보내기가 무섭게 온 그녀의 답장.

"드본타와 같이 있어. 7분이면 집에 도착할 거야."


내 얼굴을 본 드본타와 안젤리카는 눈물이.. 터졌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자니 증상을 설명하던 나도 목이 메었다. (얼굴에 눈물이 닿으면 좋지 않을 것 같아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이제는 앉아 있을 기운도 없었다. 그들이 병원에, 조슈아에게, 리사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의사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나는 소파에 쓰러지다시피 누워 있었고, 지난 2주 동안에도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던 알시노와 안젤리카는 겉옷을 입혀 주고 불을 끄고 문을 잠가 주고 병원까지 함께 가주었다.


의사(다행인지 불행인지 첫날 만난 의사)를 다시 만난 결과, 어제를 주사를 맞은 약과 처방받는 알약이 같은 성분인데 과다 복용된 것 같다며, 오늘부터는 두 알이 아닌 한 알만 먹으면 될 거란다. 대신 4일이 지나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6일 후.

다행히 붓기는 거의 가라앉았고, 가려움증도 거의 없어졌다. 드디어 3주 만에 잠도 제대로 잤다.


상처가 난 곳은 얼룩덜룩, 부었던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것마냥 허물이 벗겨지고 있어 얼굴 꼴이 말이 아니지만, 한국에 있었으면 이것만으로도 무지 신경이 쓰였겠지만, 오늘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 얼굴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뭔가 함들게 살아남아 이 글을 쓰게 된 것이 기쁜 느낌이랄까?


새해엔 다들 건강합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