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희 에세이
열 번째 책.
저자 백세희 / 도서출판 흔 / 2018.06.20
그럴 때 책을 읽는다.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을 타인에게 끝없이 털어놓는 것만큼 고문도 없다. 나나 상대에게 모두 의미 없는 감정 소모의 되풀이가 될 뿐이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내 생각과, 내 상황과 같은 책을 약을 찾듯 찾아 헤매고 종이가 닳을 만큼 읽고 또 읽고, 줄 치고 또 친대도 책은 날 외면하지 않는다. 싫증 내지 않는다. 결국 긴 시간을 딛고, 치유가 될 때까지 조용히 오래 기다려준다.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 178p -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왜 이런 일엔 꼭 '젊은'이 붙냐고 했다. 연륜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없다고, 그냥 젊은이든 전문가든 그런 수식어 다 빼고 여럿이 모여 막 던지면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냐고. 맞는 말이다. 우리 앞엔 늘 수식어가 붙는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 180p -
문창과 졸업생은 모두 수준 높은 글을 쓸 것이며 영문과는 원어민 수준의 회화를 할 거라고 여기는 단순한 생각은 오히려 당사자들의 실력을 막아선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중략)
그래서 좋아서 택한 전공을 즐기지 못하고, 본인의 실력에 자신 없는 이들은 자꾸 쥐구멍을 찾고 숨어든다.
- 180p -
한 생명의 생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어리다. 시작과 과정과 끝은 지난하고 무게는 너무 무겁다. 순간의 행복을 즐기기엔 내 그릇은 작고 부정적이다. 지금 세 마리 강아지와 누워 있는 이 시간이 못 견디게 소중하고 행복하지만 그만큼 두렵고 아득하기도 하다.
- 195p -
무덤덤하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아니 간절했다. 단순하고 가볍고 차갑고 무감각해지고 싶었다.
- 196p -
결국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은 함께하는 거라고, 아주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 온 지금 더더욱 느낀다. 함께는 이타심이고, 결국 이타심은 이기심을 구원한다.
- 198p -
나는 본질보다 태도를 중요하게 여간다. 아니, 태도 안에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지점에서 진심이 묻어 나오는 거라고.
- 20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