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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un 10. 2019

시인의 시선

지난 주말, 모임 동료들과 함께 모임장이셨던 시인의 작업실에 들렀다. 같이 점심을 먹고 양평의 동네를 함께 산책했다. 꽃이 많이 피는 시기는 지났지만 논길, 산길 곳곳에 들꽃이 피어있고, 나무는 잎에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었다. 시인과 걸으며 풀, 나무, 꽃 이름과 그 유래, 자라는 모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이 물었다.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아세요?"

길 한쪽에 무더기로 노랗게 피어있는 작은 꽃이 있었다. 이름이 애기똥풀이라고 했다. 가지를 꺾으면 노란색 즙이 나오는데 갓난아기 똥색 같다 해서 이름이 애기똥풀이었다.

"이 잎 냄새 맡아봐요. 무슨 향기가 나요?"

어느 집 문 앞에 서있는 나무의 잎에서 추어탕에 넣는 산초 향이 났다. 산초는 향신료로 열매를 갈아 쓰지만, 나뭇잎에서도 산초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나무도 처음 보았지만 잎도 그 향기를 나누고 있을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봉숭아도 그랬다. 꽃물을 들일 때, 빻아서 손톱에 묶는 주재료는 꽃이 아니라 잎이었다. 꽃의 붉은색을 잎이 그대로 담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이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요?"

산길에 별로 돋보이지 않는 나무인데, 무슨 나무인지 알만한 단서가 없었다. 시인은 진달래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 활짝 꽃을 피웠다고 했는데, 꽃이 없는 진달래를 나는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다. 우리 눈에는 그냥 산길 옆 나무들인데 시인에게는 이른 봄에 분홍 꽃 만발하는 진달래이고, 가을이 되면 잎이 타는 듯 붉게 변할 붉나무이고, 곧 열매가 달려 여름에 붉게 익어갈 구기자나무였다.

관심 어린 시선으로 보면 볼수록 세부적으로 구별한다. 참나무에도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다 서로 다르다. 변해가는 것도 본다. 지금 볼품없어 보이는 나무도 저마다의 꽃과 열매를 그 속에 품고 있음을 알고, 지금 나뭇잎 색과 열매가 있기 전에 화려한 꽃이 피는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구별과 변화에 예민한 시인의 시선은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선이다. 식물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고 꽃향기를 기억하고, 지금 지나고 있는 시절, 화려했던 꽃 피는 계절과 열매 맺고 낙엽 떨어지는 시절까지 묵묵히 챙기고 바라보고 응원하는 시선이다. 

식물이 감출 수 없는 향기를 잎과 줄기와 열매에 고루 담고 있듯 사람의 향기도 역시 그렇다. 사람의 향기는 꽃향기보다 복합적이지만 여기저기 골고루 담겨있어서 아무리 감싸려 해도 어디선가 은연중에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의 향기도 애정을 가지고 보면 어린잎의 향에서 어렴풋하게 꽃과 열매로 자라나는 모습이 보이고, 이미 자라 버린 나무에서는 꽃 피던 시절의 향기가 느껴질 것이다. 내 향기가 짙으면 다른 향기를 느끼기 어려워지듯,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시인의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고 챙기면서 살면 좋겠다.

산책에서 돌아와 시인의 집과 마당 사이 좁은 틈에서 어디선가 날아온 나무 씨들이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넓은 마당을 내버려 두고 하필 이런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안쓰럽기도 했지만 좁은 틈 사이의 흙을 비집고 올라온 새싹들이 옹기종기 올라오는 모습이 예쁘게 보였다. 시인에게 무슨 싹인지 묻지 않았다. 다음번에 오게 되면 어찌 자라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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