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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신 Sep 22. 2020

미자 누나의 희망, 대갈의 눈물

누구나 플라타너스를 키운다

https://brunch.co.kr/@desunny/49 

(앞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아직은 추운 겨울, 걸프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91년 2월에 대갈과 나는 대구 삼공단 주변에 방을 얻었다. 80만 원짜리 삭월세방을 얻은 후에 우리 수중에는 방 값 만큼의 돈이 남았다. 그 돈으로 시장에서 비키니 옷장과 냄비와 밥그릇, 국그릇, 수저, 프라이팬 등을 샀다. 그리고 삼양 라면 한 박스도 잊지 않았다. 비키니 옷장을 설치하고 몇 벌 안되는 옷을 척척 걸었다. 부엌 벽에 걸려있는 오래된 찬장에 살림살이 몇가지를 정리한 후 바닥을 쓸고 닦았다. 정리하는 데 기껏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배고프제? 라면 먹을까?" 대갈이 말했다.

"그라까?"


나는 방 한편에 놓여있는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올리고 라면을 끓였다. 곧 하얀 김이 아지랑이 처럼 올라왔다. 라면을 뜯어 면을 끓는 물에 집어 넣고 수프를 풀었다. 계란을 못 넣은 것이 아쉬웠지만, 라면 냄새가 방에 퍼질 새도 없이 후루룩 후루룩 거리며 허겁지겁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젖가락질 몇 번 만에 라면을 모두 먹고나니, 내 방이라는 안도감과 포만감이 밀려왔다. 우리는 벽에 기대 길게 다리를 뻗었다.


"니는 엄마를 찾아볼끼가?" 끄억 트림을 하며 대갈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글쎄.. 마음이 있긴 한데. 어데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살던 동네도 모르겠고.. 막막하네. 니는?"

"나는 안 찾아볼라꼬. 울 엄마는 새 시집갔다 아이가. 거 가서 머하겄노. 고마 나는 미자 누나나 찾아 볼란다."

"미자 누나...?" 대갈의 말에 나는 누나가 주던 왕사탕의 달콤하고 까슬한 맛이 떠올랐다. 뽀얀 빛깔의 통통한 뺨을 가진 예쁜 누나가 보고 싶어 졌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응, 보고 싶다 아이가."

"그래, 나도 보고 싶네. 같이 찾아보자. 근데 니 연락처는 아나?"

"응! 내가 원장 쌤한테 받아왔다. 연락한 번 없다고.. 내보고 함 찾아보라 카더라."


우리는 다음날 원장 선생님한테 받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그러나 벨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시간은 빨랐다. 삼공단 골목을 개나리가 노랗게 물들이고 커다랗고 하얀 목련 꽃이 힘없이 툭툭 목을 꺽고 떨어질 무렵에 대갈과 나는 염색공장에 취직을 했다. 대구는 섬유 공장이 많았다. 방적공장에서 만들어진 천을 가져오면 우리는 온갖 색상으로 천을 물들이는 일을 했다. 차에서 천을 내리고 위쪽으로 구멍이 뚫린 둥그런 원통형 세탁기에 천을 넣어 세탁을 먼저 한 후에 염색을 했다. 두 시간 정도 염색을 한 천들은 다시 원통형 세탁기에 집어넣고 몇 번을 세탁하여 건조를 시킨 다음에 의류 공장에 배달을 해야 했다. 염색 할 천은 끝없이 밀려왔다. 2교대로 돌아가는 공장 안에서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대화를 할 정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갈은 나보다 키가 십 센티나 크고 체격이 좋아서 밀려오는 일들을 너끈히 해냈다. 하지만 비실비실한 나는 밤만 되면 공장 구석에서 꼬꾸라져 잠이 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나를 찾아내는 반장 아저씨에게 혼쭐이 나곤 했다. 밤샘 작업을 하고 나면 몰려오는 피곤함에 지쳐 아침도 먹지 않고 잠에 빠져들곤 했지만, 첫 월급 날은 달랐다. 첫 월급날, 늘 말없이 일하던 아저씨들과 경리 누나가 들떠 있는 우리를 공장 근처 고기집으로 데려갔다. 고생했으니, 맛있는 걸 시켜주겠다며.. 경리 누나는 갈매기 고기를 주문했다.


"갈매기..?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우예 잡아서 무거요?" 대갈이 눈을 뚱그렇게 하고 물었다.

"뭐라카노.. 등치는 산 만해가.. 그냥 머그면 된다." 경리 누나의 말에 아저씨들은 낄낄거리고 웃었다.


소주가 한 순배 돌았다. 보육원에서 몰래 슬쩍 마셔본 적은 있었지만, 피곤에 절어서였던지 나는 금세 꼬꾸라졌다. 결국 있는 게 힘 밖에 없는 대갈이 나를 거의 업다시피 해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대갈과 나는 바닥에 나란히 누웠다. 잠에 취한 것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바닥으로 가라앉는 의식을 비집고 대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일요일에 미자 누나 다시 찾아보재이~"


일요일, 토요일 야간 근무를 끝낸 후 미자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에게 처음 전화를 건 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따르릉~ 벨이 울린 지 네다섯 번이 지나고, "여보세요"하고 누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나~"

"누구신데예? 혹시.."

"누나, 내 대갈이다. 대갈.. 누나 잘 있나? 어째 그래 전화도 없었노?"

"누나, 똥수도 있다.. 누나 보고 싶데이.." 나도 누나와 통화를 하고 싶어 옆에서 소리쳤다.


5년 만에 만난 미자 누나는 예쁜 아기를 안고 있었다. 통통한 볼이 누나와 판박이 었다. 아기는 대갈과 나를 번갈아 보다가 얼굴을 찌뿌리며 미자누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도 다시 얼굴을 들고 우리를 번갈아 보며 눈만 마주치면 얼굴을 찌뿌리며 칭얼거렸다. 분명 대갈 때문이었다. 험상궂은.. 대갈..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누나의 볼은 예전만큼 통통하지 않았고 눈에는 피곤이 역역했다.


"누나 결혼은 은제 했노? 아는 몇 개월 됐고" 대갈이 물었다.

"작년에 결혼 해가.. 금방 임신했다. 야는 이제 3개월 됐.."

"근디, 야는 남자가 여자가? 머리가 빠박인 거 보니까.. 남잔거 같기도 하고.." 누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도대체 여자애인지 남자애인지 알 수 없어 물어봤는데, 미자 누나는 어딜 봐서 남자 아이냐며 면박을 줬다. 나비 핀이라도 하나 꼽아줬으면 금방 알았을 텐데..

"아저씨는 뭐하시는 데?" 괜히 민망하여 내가 머리를 긁적이는 중에, 대갈이 미자 누나에게 남편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누나는 배가 고픈지 대답도 없이 석박지를 집어 먹었다.


마침 식사가 나왔고, 우리는 돼지 국밥을 한 그릇씩 말아먹었다. 아직은 꽃 샘 추위에 옷깃을 여밀 때지만 국밥 한 그릇에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누나도 그랬던지, 포대기에 쌓인 아이를 옆에 내려놓았다. 포대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목 주위에 엷게 멍든 자국이 보였다. 나와 대갈은 누나의 멍든 자국을 보며 놀란 마음에 동시에 얼굴을 돌렸다. 대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대갈이 입을 열었다.


"누나 그기 머꼬? 목 옆에가 와 그렇노?"


누나는 황급히 옷깃을 여미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누나의 하얀 볼에 힘이 들어가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포대기에 쌓인 아기는 예쁜 미자 누나, 아니.. 엄마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토요일 밤을 꼬박 새운 턱에 피곤이 밀려왔다. 주, 야 교대가 있는 날이라, 그날 밤은 잠을 잘 수 있는 행복한 날이었지만.. 식당에서 울음을 터트린 누나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나는 대갈의 계속된 물음에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주물 공장에 다닌 동갑내기 신랑이 얼마 전, 부품을 가득 실은 지게차에서 쏟아진 물건들에 깔려, 결국 3일을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있다 죽었다고. 아이는 이제 겨우 옹알이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으나.. 죽을 수 없었다고.. 발버둥 치며 살아났다고 했다.


아이를 두고 갈 수 없었다는 누나의 말을 떠올리며, 왜 불행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생각하고 있을 때, 대갈이 뒤척거렸다. 창 밖에서 가로등 불빛이 스며 들었다. 산 꼭대기, 돌댕이 만한 대갈의 머리에서 은빛 물방울이 반이며 흘러 내렸다. 나는 '저게 뭘까....' 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누나의 품에 안긴 아기가.. 대갈을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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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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