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 없어요, 난 내 나름의 부지런함이 있는 걸요.
요가 이외에 또 시간을 내서 운동할 여력이 없는데요
요가 수업을 받고 있는 헬스장이 몇 달 전엔가 주인이 바뀌었다. 다소 촌스러웠던 헬스장 이름이 영어 이름으로 바뀌었고, 일하는 사람들과 시스템도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스트레스를 비워낼 작디작은 요가룸만 온전하면 됐기에 내 알바는 아니었다.
그러다 최근에 남편의 요가를 등록하기 위해 헬스장에 찾았을 때, 문득 ‘아 이곳 바뀌었지’ 하는 걸 실감했다. 등록을 하면 남편에게 인바디와 OT를 해주겠다는 거였다. 내가 등록할 땐 분명 그런 건 없었다. 인바디는커녕 러닝머신 위의 TV를 켜는 방법도 몰라 나 혼자 헤맨 기억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남편은 받고 나는 못 받았다 생각하니 억울해서 조심스레 남편을 시켜 물었다. 고맙게도 헬스장 측은 나에게도 해주겠다 답했다.
그리하여 헬스에는 관심이 없으나 혜택은 챙기고 싶었던 나는 OT일정을 잡고 헬스장에 올라가게 되었는데. 앳되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내 몸 상태를 체크해보겠다며 꼼꼼히 진단을 이어가셨다. 그래도 꾸준히 해 온 요가 덕일까, 진단 결과 내 몸은 그리 나쁜 상태는 아니었다. 코어 힘도 나름 있는 편이고 근육의 수의 능력도 꽤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속으로 나는 “이 모든 게 요가를 해왔기 때문이야. 그마저도 안 했으면 아마 건강 쓰레기 판정을 받았겠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내 만족에 비해 선생님은 뭔가가 아쉬운 듯 헬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셨다. 헬스장은 전혀 안 올라오시냐, 근력운동은 안 하실 거냐, 건강을 위해 헬스가 꼭 필요하다, 하며 약간의 헬스 예찬론을 펼치셨는데..., 사실 이는 요가 예찬론자인 나에게는 살짝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요가에도 나름의 근력운동이 있기도 하고, 매일 1시간씩 하는 요가 이외에 또 시간을 내서 운동할 시간적 여력이 내게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헬스가 전문인 선생님에게, 요가는 아마도 ‘운동이 충분치 않은’ 영역에 속했나 보다.
운동하는 시간만큼이라도 이완을 하고 싶었다.
그다음 주, 한 번 더 진행되는 OT를 받으러 나는 다시 헬스장을 찾았다. 내 몸 구석구석의 상태도 알 수 있고 근육을 마사지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셔서 참 좋기는 했다만, 선생님은 저번과 같이 헬스는 안 하느냐고 또 물어오셨다. 그러면서 내 직업에 대해서도 은근슬쩍 물으셨다. 나는 괜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가 내가 원치 않는 반응으로 이어질까 봐 대충 집에서 재택근무를 한다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선택을 잘못한 걸까. 선생님은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시간이 많은데) 왜 헬스를 안 하냐는 뉘앙스의 말을 이어왔다. 말하는 어투 자체는 상냥하고 조심스러워서 내 기분을 크게 해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괜히 겸연쩍었다. 뭐랄까, 본의 아니게 굉장히 의지가 박약하고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OT가 완전히 끝난 후, 상담 비슷하게 선생님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선생님은 마지막 동아줄을 잡듯 내게 또 물어왔다. “회원님 앞으로 요가 이외에 헬스를 할 생각은 없으신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었다.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정말로, 하루 1시간 이상의 운동시간을 낼 수는 없을 만큼 할 일이 많아서였다. 그렇다면 왜 그 1시간을 헬스가 아닌 요가에 쏟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운동에 대한 내 기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몸담은 종목에 더 우수함을 느끼고 설파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 선생님도 자꾸 헬스를 추천하는 거겠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살뿐이다. 이내 아쉬워하는 그녀의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요가 시간이 되어 요가를 하러 내려갔다.
매트 위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늘리고, 한 다리로 서서 균형을 잡으며 땀을 흘리는 동안 나는 방금 전 타인으로부터 받은 약간의 스트레스를 떨쳐낸다. 집에서 편하게 일하는 여자, 그런데도 헬스장을 끊어놓고 요가만 하는 여자, 게으른 여자, 의지가 박약한 여자.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없어서 받을 수밖에 없는 어떤 오해를, 그 속상함을 요가를 하며 말끔히 비워낸다.
내가 요가를 사랑하는 이유 또한 그런 부분에서였다. 요가에는 다른 운동과 달리 비워냄의 힘이 있으니까. 일정 BPM 이상의 빠르고 공격적인 음악들 사이에서 헬스를 하노라면, 나는 하루 종일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산만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었다. 낮동안에 이미 뇌와 몸은 충분한 각성상태였으니, 운동하는 시간만큼이라도 이완을 하고 싶었다. 요가는, 내게 그런 운동이었다.
타인에 대해 섣부른 오해를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
오해라는 건, 살아가면서 평생 겪어야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니까. 최근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박상영 작가’는, 지금처럼 유명한 작가가 되기 전 직장을 다니며 글을 썼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부지런한 사람인데, 그런 그도 운동만큼은 끊어놓고 자주 가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운동 면에서만 보자면 그는 의지가 박약한 사람일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게 그 사람의 전체를 대변할 수 있을까. 거의 매년 책을 내고 있는 그는 누가 봐도 분명히 부지런한 사람인데.
집에서 널널하게 글을 쓰는 여자로 오해받는 나도 매한가지다. 하루 다섯 시간 이상 꼬박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는 것은 물론, 나는 대다수의 가사를 담당하고 있다. 신랑이 올 시간에 맞춰 밥과 반찬을 손수 차리고, 매일 1회 이상의 빨래를 돌리고 개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쓰레기를 비우며, 널브러진 물건과 옷가지를 제자리에 넣고, 고양이 똥을 치우고 있다. 별 거 아닌 일들의 집합처럼 보여도 나름 내 하루는 일과 가사로 빠듯한 것이다. “집에 있는데 뭐가 바빠?”라는 사람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항변을 하는 것보다 그저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편하기에 넘어갈 뿐.
다만 그런 오해를 받아본 설움을 알기에, 스스로는 타인에 대한 섣부른 오해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우선순위와, 자신만의 부지런함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을 터다. 나도, 내 남편도, 헬스장 선생님도, 헬스를 끊어놓고 주 1회밖에 오지 않는 게을러 보이는 수많은 회원들도. 모두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려니.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칭찬하는 바다.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면서, 아내로서의 본분도 잃지 않는 부지런한 나를. 비록 헬스는 못하지만 요가를 열심히 다니는 꾸준한 나를. 내가 생각할 때 부지런하다면, 누가 뭐라든 난, 부지런한 사람이 맞으니까.
인스타그램 @wood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