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가 꿈이라는 글을 쓰고 나서 글을 내릴까 싶었다. 떠벌리는 성격이 못 되는 내가 어쩌자고 저런 글을 떡하니 올렸을까.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도 그렇다. '나 OO 샀어, 기대해.'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어디까지나 내가 '주는' 경우에 한해서다. 받는 건 어떤 형식이든 다 좋다)
상대가 미리 좋아하는 게 뭔지 묻거나, 내가 생각해 둔 선물을 슬쩍 언질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 깜짝 선물로 '짠'하고 내미는 걸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좋아할 만한 걸 고민하는 다소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지만 서프라이즈 선물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수고스러움이야 한 방에 날아간다.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써왔지만 주변에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뚜렷한 결과물도 없는데 '난 동화를 쓰네' 하며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작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친구들에게 관련 기사를 링크해 보낸 것이 처음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너 글도 썼어?' 하며 '뭥미?'라는 반응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도 '네가 그렇게 진지하게 글 쓰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고.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이런 걸 말하고 싶지 않을까?
뚜렷한 결과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쓰고 고치는 지난한 과정은 말할 꺼리가 없고, 탈락하고 떨어지는 지리한 도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실망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듣고 싶어 하는 이가 있을까. 떠벌리고 다닌다고 잘 쓰는 것도 아닌데, 결과가 나오고 나서 말하면 되지, 라는 생각.
그런 내가 그림책 공모전 이야기를 알아서 꺼내놓다니.
응원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최근 응모하는 동화 공모전마다 본선까지 올라가서 미끄러졌다. 처음 본선에 올라갔을 때는 무지 기뻤다. 내가 본선까지 올라갔다고? 하지만 본선, 또 본선... 이 반복되자 내 글은 당선되는 글은 못 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흐윽.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12번 퇴짜 맞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대가로구나, 싶었다. 겨우 12번 퇴짜를 맞았다니. 나는 횟수를 셀 엄두도 못 낼 만큼 떨어지는 중인데...
하강 비행하는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환기하는 기분으로 그림책에 도전하게 된 거다. 새 도전에 새 기운을 얻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덜컥 브런치에 공개해 버렸다.
굳은 손으로 처음 하는 도전은 쉽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간에 쫓겨 폐인처럼 작업을 했다. 집은 엉망이었고 집 밖의 꽃은 날 보러 오라 불러댔다.
독학으로 주워들은 방법으로 편집을 하고 가제본을 만들어 어제 무사히 제출을 했다! 라이킷과 댓글로 주신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 긍정의 말로 북돋워주시니 플라시보 효과가 발휘되었다. 그 덕에 마감 기한에 맞춰 제출할 수 있었다.
작업물이 그림책으로 나오기를 바라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단 1명을 뽑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작은 의미를 찾자면 제본을 맡길 때 3권을 요청했다. 응모할 1권, 내가 소장할 1권, 마지막으로 귀여운 조카에게 줄 1권이다. 4,5세를 대상으로 쓴 작업이니 이제 4살 된 조카에게 딱 맞을 것이다. 조카에게 그림을 보여 줄 생각을 하니 설렌다.
이런 근황을 공개하는 것이 참으로 민망하다. 그래도 일단 던진 말이니 매듭은 지어야 할 것 같아 글을 올린다. 이제 봄 이불로 바꾸고 미뤄두었던 책도 읽어야겠다. 드라마 시지프스 재방송도 찾아보고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도 봐야겠다.
그림을 몰아 그리다보니 글이 마구 쓰고 싶어 졌다. 좋은 증상이다.
그전에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으니, 몇 주동안 굳어진 목을 스트레칭하며 이만 꽃비 맞으러 나가봐야겠다.
부끄럽지만 보내주신 응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