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꽃을 봤으면 답을 해야지
플로리스트 하면 꽃을 사뿐 안고 우아하게 다니는 여리여리한 이미지가 생각나겠지만, 체력과 깡이 꼭 필요하다. 한 손으로 내 몸통 두 배 부피인 꽃을 낑낑거리며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미어터지게 짐을 실은 카트를 밀고 다닐 때가 많다. 앞이 반만 보이고, 내가 카트를 미는 건지 카트가 나를 끌고 가는 건지 모를 무게로. 적어도 행사와 수업을 주로 하는 나 같은 사람은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많은 일반 엘리베이터 대신 건물 구석의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탄다.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청소 아주머니, 빌딩 관리하는 직원들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그분들 눈에 내가 아닌 짐이 먼저 보인다. 짐의 양에 놀라 어이쿠 하면서 비켜주실 때가 많다.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업도 행사도 시작 전에 공간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주차장까지의 거리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은 길다. 직원용 카드키를 찍어야 들어가는 곳은 직원을 두 번 왔다 갔다 하게 할 수가 없다. 수업 세팅과 행사 데코는 늘 뛰어다니면서 해야 할 정도로 빡빡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여야 한다. 물이 많이 필요하기에 화장실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은근히 꽤 걸린다.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감사하다. 없는 곳들도 있으니까. 작은 공공기관,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인 학교, 오페라 공연장 위에 따로 마련된 VIP홀이나 야외 공연장 등. 그러면 짐을 분할해서 여러 번 다니며 팔힘을 기른다.
아무리 무거워도 꽃은 꽃이다. 꽃은 환영받는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어머 꽃이네~' 하는 소리가 반갑다. 특히 청소이모님들이 좋아들 하신다. 꽃 이름을 알려드리면 따라서 발음해보신다. 모두가 그러신 건 아니다. 내 카트가 지나간 자리에 떨어지는 나뭇잎, 수업하거나 데코 한 자리에 남는 흔적부터 걱정하시기도 한다. '꼭 치우고 가세요'라고도 하신다. 모두가 그분들의 일이 될 수 있기에 당연하다. 그래서 당연하지 않은 친절이 더 감사하다.
꽃작업을 하면 뒤꼭지에 레이더가 켜진다. 담당자가 다가오면 무슨 말을 하려나 긴장하며 더 빨리 꽂지만, 청소이모님이 감지되면 얼른 주변을 치운다. 물티슈, 키친타월, 100리터쯤 되는 두꺼운 쓰레기봉투 - 이런 것들을 꼭 들고 다니는 건 담당자보다도 청소이모님들 때문이다. 나뭇잎은 신발로 밟으면 짓이겨져 바닥에 초록물이 들 수 있기 때문에 바닥에 깔 두꺼운 종이도 필요하다. 일이 끝나면 쭈그려 앉아 물티슈와 키친타월로 바닥을 빡빡 닦고 커다란 쓰레기더미를 들고 나오는 것까지가 일 마무리이다.
어쩌면 '담당자의 평가가 중요하지 청소이모님 눈치를 뭘 그렇게 보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 일의 끝맺음은 내가 정하기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귀한 내 꽃들이 누군가에게는 반갑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도 싫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에게 받은 친절과 감탄에 대한 나만의 보답이다.
꽃일을 하면 꽃이 힐링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꽃보다 꽃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힐링일 때가 많다. 수강생들이나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행복해하는 모습과 감탄, 담당자의 세심한 배려는 일을 마치고 나서도 계속 떠오른다. 청소이모님의 '아유 예뻐라'라는 한 마디도 뻐근한 관절을 잊게 한다. 그리고 작은 친절들도.
큰 행사가 있던 그날도 남은 꽃줄기가 어마어마하게 무거웠다. 대개 모두 담아 집에 갖고 온다. 이렇게 큰 쓰레기를 버릴 만한 종량제 봉투도 없고 건물마다 버리는 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모으고 있는 내게 이모님이 쓰레기봉투를 내밀며 "이리 줘요." 하셨다. "그래도.." "아유~ 괜찮아요."라는 말에 눈웃음과 보조개가 더해져 진심이 보였다. 이런 날은 횡재한 기분이다. 손이 가벼운 시간은 짧지만 마음이 포근한 시간은 길게 남기에.
화물 엘리베이터는 숨겨진 공간에 있다. 나오면 묵직한 철문을 다시 통과해야 한다. 문턱도 종종 있다. 며칠 전 만난 이모님은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나가 문을 잡고 나를 기다려주셨다. 등으로 끙끙 밀 때가 많기에 그 문만 잡아주어도 짐을 나르는 게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꾸벅 하니 "예쁜 꽃을 봤으면 답을 해야지." 하신다. 자그마한 키에 다정하고 활기찬 목소리, 편안한 미소.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 그 하루는 피곤치 않은 날로 이미 예약됐다.
꽃 한 번 본 게 사람에게 친절할 이유가 된다면 세상은 친절꽃이 만발할 텐데. 요즘 조금 무서울 정도로 천지를 뒤덮고 있는 철쭉처럼 가득하겠지. 매일 꽃을 드는 나부터 사계절 친절도 함께 들고 다녀야겠다. 말과 행동으로 내미는 친절꽃보다도 더 반기실 향기로운 꽃 한 송이 건네고 싶어진다. 꽃이 곱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더니 한 송이만 주면 안 되냐던 어느 사근사근한 이모님이 생각 나서다. 그날은 자칫 꽃이 모자랄 수 있어 애매하게 웃어 보였지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기억 속 이모님들을 다시 만나길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