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사랑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사랑이어야만 했다. 의구를 품는 것은 엄격한 금단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에게 사랑받았던 순간을 물었을 때는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선명한 것이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지만 막상 정면으로 마주하자 자신은 그것을 만질 수도, 아니 그것에 닿을 수도 없음을 깨달았다. 분명히 분에 넘친 사랑을 받았고, 심지어는 이 순간에도 받고 있을 것임에도.
처음으로 그것이 정말로 사랑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끝내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온 삶에 걸쳐 눈물로 희구해 온 사랑의 껍데기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은 떠올릴 추억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장 순수한 사랑을 받았던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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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다운이 그의 아빠와 같이 살았던 마지막 집에서, 그러니까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의 어린 시절에 많은 여자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그도 내심 아빠보다는 엄마를 좋아했다. 아빠는 다운을 자꾸 귀찮게 했다. 다운을 안아 들고는 빙빙 돌리거나 높이 올리기도 했고, 까불이라고 부르며 볼을 꼬집기도 했다. 아무튼 한 공간에 있을 때면 한시도 그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특히나 뽀뽀를 한답시고 볼을 비비적거릴 때면 질색하며 도망가던 다운을 그는 끈질기게도 쫓아다녔다. 온 가족이 단칸방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시절엔 시도 때도 없이 빼꼼 고개를 들어 다운이 자고 있는지 장난스럽게 확인하기도 했다. 어쩌다 나들이라도 가는 날이면 만발한 진달래 사이에 다운을 세워놓고는 세상 제일의 예술가가 된 듯 사진을 찍어댔다. 유치원생인 다운은 붙박이처럼 서 있기만 해야 하는 사진 모델은 그만두고 뜀박질이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운은 아빠가 참 귀찮았다. 어쩔 때는 꼬집힌 볼이 정말로 얼얼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 그의 모든 이야기와 노래를 이 세상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하게 듣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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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약 2년 뒤, 그는 그 후로 다시는 아빠와 같은 집에서 같은 밤을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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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차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당최 몰랐다. 그런 사랑을 받아본 기억도, 주어본 기억도 없었다. 그러나 오래전, 아주 오래 전의 어떤 기억이 맥락 없이 떠올랐던 순간은 다운에게 사랑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깨우쳐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받아들였을 때쯤이었다. 맥락 없이 솟아 나오는 눈물이 버스 안의 다운을 당혹스럽게 했으나 그 눈물에는 맥락도 이유도 있었다.
어떤 마음은 아주 오랜 시간이, 그 마음의 존재를 거의 잊어버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도착하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