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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예비작가 Jan 25. 2024

얼룩

마흔부터 다시 시작하기

날씨가 참 좋은 날이다.

비가 내리는 지금 날씨가 참 좋다.

가벼이 불어주는 바람도 시원하게 내 머리카락을 흔들며 스쳐 지나가는 지금 비 오는 날씨가 좋다.

땅으로 떨어진 빗방울이 내 발끝에 뛰어올라 물들어 간다.

바지 끝에 물들어가는 빗방울이 얼룩처럼 조금씩 퍼져가며, 내 몸에 자리 잡고 자신의 자리인 듯 머물러 물들어 간다.

가벼이 불어주는 바람을 타고 빗방울이 휘날리며, 나에게 찾아온다.

처음에는 땅에서 튀어 오르는 빗물이었고, 이제는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빗방울이 내 몸에 찾아 젖어든다.

이렇게 물들어가는 빗방울이 나에게 얼룩으로 남겨질 것이다.

땅 위로 떨어져 튀어 올라 내 바지 끝에 묻어버린 흔적과, 바람에 휘날리며 내 몸에 찾아든 빗방울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겨져 있다.

털어버리려 해도 이미 찾아든 그 빗방울은 흔적처럼 얼룩으로 남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내 삶에서 흔적처럼 남겨져 보이지 않는 얼룩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지우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 흔적처럼 남겨진 얼룩은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이었다.


나는 넘어졌다.

화창한 날 길을 가다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 그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내 몸에 무언가 묻어 있었고, 내 두 손으로 옷을 털어 보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남는다.

비 내리는 날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비 때문에 내 몸으로 찾아든 빗물은 시간이 흐른 뒤 더 이상 찾아오는 빗방울이 없이 멈추면 젖어든 옷도 빗물이 마르면 얼룩으로 남는다.

가끔씩 내 얼굴을 타고 끝도 모르게 흐르던 눈물이 멈추고 마르면, 내 얼굴에 눈물자국이 얼룩으로 남겨질 것이고, 끝을 모르게 흐르던 내 눈물을 땋았던 손수건에도 얼룩은 남을 것이다.


나는 비가 오는 지금이 너무 좋다.

내리는 비를 맞고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은 내 모습에 남겨져 있던 모든 얼룩을 지워주니 좋다.

내가 보지도 못한 얼룩을 지워주니 좋다.

지워주는 것인지 가려 주는 것인지 그것 말할 수 없는 확신이지만, 그래도 지워주고 가려줘서 내리는 비를 맞고 길을 걷는 내가 너무 좋다.

세상에 남겨져 있던 얼룩을 씻겨주듯 지워주는 것 같아 지금 비 오는 날씨가 좋다.

내가 내딛는 거리의 길 위에 남겨진 얼룩도, 나뭇잎 끝자락에 남겨져 있던 얼룩도, 차 위에 가볍게 내려앉아 있던 얼룩도 지금 내리는 빗방울에 언제부터 인지도 모르던 순간부터 묻어 있던 얼룩을 바람에 휘날리듯 내리는 빗물에 천천히 지워져 가고 있다.

나는 나에게 남겨진 얼룩을 지금 내리는 비를 맞으면 보이던 보이지 않던 얼룩을 천천히 지워줄 것 같아 비를 맞는다.

한 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천천히 지워줄 것이다.

지친 내 영혼마저 천천히 지워주길 바란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인사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마웠다고 인사말을 전하면 내 모든 시간에 마침표를 찍어줄 것 같고, 그 마침표가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 남겨질 것 같아 쉽게 인사를 못하고 있다.

나는 씻기듯 얼룩과 함께 지워지면 되지만, 남겨진 그들에게는 지워지지 않을 얼룩으로 남아 모든 날들에 나를 마음 아파할 것 같아 마침표를 찍듯 인사말을 고맙단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인데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얼룩을 만들면서 견디고 있는 것 같다.

하루만 더 그들과 있고 싶은 생각으로 마침표 같은 인사 말이 아니고, 반가운 미소로 그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도 그것을 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만 더 나와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아주듯 가볍게 불어주는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흔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숨 쉬는 지금 깊게 들어마시는 숨이 내 괴로움을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내가 내쉬는 숨은 그들에게 평온과 행복을 전하고 싶어 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내쉰다.

넌 나처럼 아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나도 이제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아픔에 사로잡혀 움츠렸던 내가 아직은 서툴지만 세상으로 나와 그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난 지금을 견디고 있고, 힘들지만 괜찮은 척하지 않고, 정말 괜찮아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다.

아직은 방법이 서툴고 어렵지만, 눈물 흘리며 일어선 나를 내가 보려고 한다.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오래전 우리의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남겨질 얼룩을 지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거리 위를 걷고 있는 나에게 남겨지는 얼룩 없이 지우고 다가가려고 한다.

“나 왔어” 인사하며 그렇게 가고 싶다.

마침표라는 얼룩이 아닌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나에게 남겨진 얼룩도 없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느낌표가 가득한 날들로 그런 날을 채우고 싶다.

작은 얼룩은 있겠지만, 그 얼룩을 받아줄 사람들에게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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