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를 탈퇴하고 캐나다 치과의사 시험을 준비하는 치과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강의를 준비하고 주말이면 시간을 내어서 강의를 진행하였다.
지금은 시험이 좀 바뀐 것 같지만, 당시 캐나다 치과의사 시험은 예비시험 3단계와 국시로 나뉜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소모된다. 필기와 실기가 아우러진 시험으로 최종 합격률은 대략 15%정도 될 것이다. 이것은 1차부터 준비해서 최종 국시까지 합격한 비율을 말한것이다. 각 과정에서 계속해서 걸러지는 시험이라 정확한 통계는 없다.
국내 치과의사들 중 캐나다 치과의사를 통과한 치의는 2~300백명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같이 캐나다 면허시험을 준비했고 최종적으로 합격한 동료치과의사들은 하나 둘 캐나다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학교 후배 건아(가명)는 취업허가를 받고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유콘주로 떠났다.
"형, 저는 아직 제 미래를 상상하기는 힘들어요. 아직 한국에서도 제대로 개원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뭔가를 성취해본 적이 없어서 쉽게 캐나다로 떠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혹시라도 제가 거기서 자리 잡으면, 나중에 형한테도 도움이 되보도록 할께요."
" 가서 잘 살고,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우리 충분히 잘 살 수 있으니까, 즐겁게 살아라."
그렇게 건아도 가고, 다른 형들도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마니토바로 떠났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다들 떠나니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외국에서의 생활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캐나다 면허시험의 예비시험은 뉴질랜드에서도 인정이 되었다. 그래서 한번도 안가본 뉴질랜드가 가보고 싶었다. 가족에게 허락를 구하고 뉴질랜드로 갈 준비를 한다.
이 시기에는 뭔가 할 것이 많았지만, 마음은 붕떠있는 상태였다. 기타를 잡으면 민구가 떠올라 조금 연습하다 금방 그만두곤 했다.
음악....
여기서 놓아버린다면, 계속해서 잊어버리고 살 것 같았다. 주중 저녁 시간에 짬을 내서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잘 맞는 선생님이 필요해서 두어번 그만두면서 레슨을 이어나갔다.
음악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기타 치는 법도 선생님마다 다 다르다. 추구하는 음악도 다르고 같은 노래를 연주해도 주법이나 뉘앙스가 다 달랐다. 많은 음악을 듣고, 기타를 연습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소리와 음학적 취향이 어떤지 이 시기에 명확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밴드 "넬"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계속해서 실패를 하고 치전원 입시를 준비하고 그리고 캐나다 치과의사 시험 준비를 하면서 힘든 마음을 항상 '넬'의 음악으로 달랬다. 그 외에는 oasis, coldplay, cigarrettaftersex, 등등 다양한 락음악을 듣고 국내 인디음악들도 찾아서 많이 들었다.
뉴질랜드로의 이주계획은 결국에 실패했다.
처음 개원을 해서 정이 많이 들었던 치과를 폐업하고, 영어 스피킹 학원을 다니면서 살던 집을 전세로 주고 이사준비를 하고 중계인을 통해서 애들 학교를 알어보고 가서 살 집을 알어보고 항공권을 예매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렇게 기승을 부릴 지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일단 모든 것을 보류하고, 와이프와 애들은 처제네 집으로 가고, 나는 어머니와 형이 살고 있는 세종으로 내려왔다. 한순간에 집도 절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금일 12월 1일 가수 클리닉의 두번째 싱글. "나의 그리움을 그대는 모르기를...."이 발표되었습니다.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클리닉을 검색해서 많이 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