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을 서재에 한정하지 않고 확장해서 사용하는 중
작년 초에 썼던 글(책을 많이 읽으려면)에도 나오듯 우리 집은 원래 거실을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책장과 책상, 그리고 소파 이렇게 세 가구만 두고 거실을 사용했었다.
작년 말 이사를 하면서 집의 구조가 바뀌게 되었고 과감하게 책장을 작은 방으로 넣고 거실에는 책상과 소파만 남겼다.
책장을 방으로 넣은 이유는 거실에 있는 책장이 살짝 정신사나워 보였기 때문이다. 조용히 있지만 책들이 거기 서서 '나 여기 있다~ 네가 아직 안 본 내가 바로 여기에~' 하고 눈치 주는 듯한 묘한 압박감도 있었다. 누구한테 자랑하려고 꺼내 놓은 것도 아니고, 서점처럼 책을 매일 꺼내 보는 것도 아니기에 필요할 때 꺼내서 보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방으로 넣었다. (특히나 요즘 책은 리디북스 페이퍼로도 많이 보기 때문에 굳이 책장이 눈에 잘 띄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에어컨을 설치하러 오신 기사님은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어컨은 이전 설치하려면 전문 기사님을 따로 불러야 한다. 비쌈 ㄷㄷ) 우리 집 거실을 보고 "아직 짐 다 안 들어온 거죠?"하셨다. 소파와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셨을 법도 하다. 그렇게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우리 집 거실. 소파, 그리고 판 하나에 다리 4개가 전부인 가늘고 긴 책상이 전부다.
일단 TV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거실 공간 구성의 자유도는 급격히 높아진다. 이사 왔을 때 처음에는 소파가 베란다를 향하도록 배치했다. 고층인 데다가 바로 앞에 아파트 건물이 서있는 게 아니라 시야가 트인 편이어서 뷰를 감상하기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거실 창문 쪽으로 평행하게 책상을 두고 있었는데 책상 활용도가 너무 떨어졌다. 따로 책상용 의자를 두지 않고 식탁 의자를 옮겨서 사용했던 터라 주방에서 거실 끝까지 의자를 옮기는데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었고, 창쪽을 바라보고 앉으면 거실등을 등지고 앉게 되기 때문에 그림자가 졌다. 둘 밖에 없는 공간인데 창밖을 보고 앉게 되면 나머지 모든 공간을 등지게 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책상보다 식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사용하거나 책을 펴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식탁이 매우 너무 베리 스몰 작아서 뭘 좀 하려고 하면 오만 집을 다 옮겨야 했다. 그리고 음식물을 섭취하는 곳과 사무를 보는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리하여 책상이 베란다 창문과 평행하게 한 번 두어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베란다를 들락거릴 일이 많아 통행에 방해가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책상을 이동시켰다. 보통의 집에서 소파가 위치하는 거실 벽면에 두고, 대신 책상을 그 앞 벽면에 배치했다. 대신 책상을 벽면에 바짝 붙이지 않고 소파를 바라보고 의자를 두고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두었다. 약간 책상이 거실 한가운데 까진 아니지만 섬처럼 떠있는 구조로.
그 결과 확실히 공간 활동도가 높아졌다. 소파에 앉을 수도 있고, 거실에 누울 수도 있고, 책상 앞에 앉을 수도 있다. 그리고 TV나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책상을 소파 앞으로 가져다 놓고 책상 위에 아이패드를 올려놓고 보면 된다. (현재는 진지하게 빔프로젝터 구매를 고려중이다)
집 구조를 이렇게 바꾸고 나서 책상 활용도 역시 현격히 높아졌다. 일단 거실에서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앉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는다. 책을 보든 브런치를 쓰든 일본어 공부를 하든 일단 책상에 허리 펴고 앉아 뭐라도 하게 된다. 도구나 환경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순 없지만,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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