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화통 같은 목소리의
여학생은 그 후

by 도희

남녀공학인 M고로 옮겼다. 여학생 반이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공부에 미련은 없지만 인생에 미련은 남아 다행이라 여기던 한 소녀를.


그녀는 뽀얀 피부에 통통하고 귀여웠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면 누구나 당황하게 된다. 옆 사람에게 살살 말하는데도 교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다. 내뱉는 말의 삼분의 일은 거칠고 걸쭉한 농담이라 어찌 보면 여고생이 아니라 중년 아지매와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첫 상담에서 그녀가 말했다. 아, 그녀 대신 가명을 써야겠다. 그녀가 자꾸 오타가 나 그년이 된다. 솔이라고 부르자. 솔이가 대뜸 말했다. “저 한 달 다니다 자퇴할 건데요.” 뚜렷한 이유도, 그만두고 뭘 할 건 지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학교가 재미없다고 했다. 1학년때부터 줄곧 부모를 졸라 온 모양인데 이번에는 기필코 설득하여 자퇴를 하겠으니 자기한테 신경 끄라했다.


나는 쿨하게 “그러지 뭐. 너 아니라도 나 무지 바빠.”라고 하며 대신 조건을 걸었다. 공부도 하기 싫고 심심할 테니 그만둘 때 두더라도 학습 도우미가 되어 달라고 했다. 수업 시작 전 학습지를 가지러 오거나 교재가 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이었다. 아 물론 내 사전에 공짜는 없다. 주급으로 사탕 5개를 지급했다. 간혹 보너스로 막대사탕도 건넸다. 그렇게 솔이는 나의 가방 모찌(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가 되었다.


솔이는 쉬는 시간이면 미리 옆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일이 바쁘면 혼자 먼저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교실까지 함께 걸었다. 주급이 아깝지 않게 의외로 근무태도가 좋았다.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사소한 얘기를 나누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났다. 모른 척했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자퇴한다는 말이 없었다. 복도를 걸으며 솔이는 가끔 내 팔짱을 끼기도 했다. 지나가던 친구가 “야, 뭔데” 하며 시샘 반 농담 반으로 짓궂게 놀리면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몇몇 아이들은 가끔 쉬는 시간에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솔이도 그중에 속했다. 물론 걔들의 집에는 나보다 예쁜지는 모르겠으나 건강하고 젊은 엄마가 있었다.

솔이는 방과 후 수업과 자율학습을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누구나 자율학습을 해야 했지만 솔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공식적으로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하교 후 시내에 있는 신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끔 진상 손님과 벌어지는 이야기를 입에 침을 튀기며 떠들어댔다. 2학기가 되었다. 솔이 입에서 더 이상 자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평소 답지 않은 진지한 태도로 신발점 알바를 그만두고 제과제빵을 배우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니 무조건 찬성이었다. 제과제빵 학원에 다닌 후 솔이는 종종 구움 과자나 빵을 가져왔다. 모양은 엉성했지만 맛은 좋았다. 어떨 땐 꽤 많은 양을 가져와서 학급 전체가 나눠 먹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일 년이 후딱 지나갔다.

다음 해. 새 학기를 맞아 출근하는 학교 정문옆에는 별모양 노란 전구 같은 개나리가 수없이 반짝였다. 여기저기서 톡톡 튀는 웃음을 내뱉으며 재잘대고 있었다. 봄이었다.


나는 다시 솔이의 3학년 담임이 되었다. 가방모찌는 다른 아이에게 넘겼지만 솔이는 여전히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팔짱을 꼈다. 제과제빵 학원에 재미를 붙이는가 싶던 솔이 뜻밖에 상담을 청했다.


세상에! 솔이가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공부를 하긴 해야겠는데 어디서부터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녕 네가 자퇴를 부르짖던 그 솔이가 맞느냐? 내신과 모의고사 통틀어 체육 빼고 전 과목 9등급인 나의 사랑스러운 제자여. 너를 어찌할꼬.


솔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다. 어릴 때부터 아가들이 너무 귀여웠고 지금도 사촌 동생들을 잘 돌보니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 해 보자. 인생 백 년인데 올해 안되면 내년에 가지 뭐. 그렇게 솔은 학교 문턱을 밟은 후 처음으로 공부를 위한 학원을 다녔고 과외도 받았다. 그리고 10시까지 남아 자율학습을 했다.

5월이 되자 솔의 부모님이 쑥떡을 해 왔다. 2학년때도 솔의 부모님이 직접 쑥을 캐어 방앗간에 맡겨서 만든 쑥 카스텔라를 해 왔었다. 이번엔 쑥 인절미였다. 같은 부서와 학년실 선생님들이 나눠 먹을 만큼 넉넉한 양이었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다니는 것이 마치 내 덕 인양 말해 부끄럽고 민망했다.

솔이의 성적은 나아졌고 야무지게 꿈도 키웠지만 유치원 교사가 되는 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큰 목소리였다. 오죽하면 별명을 기차화통이라 붙였을까. 게다가 막말 작렬. 큰 소리 낼 때마다 그러면 아가들이 놀랜다고 조심시켰다. 솔직히 성적보다 목소리에 더 신경이 쓰였다. 그랬던 솔은 무사히 면접까지 통과해 전문대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가끔 만날 때마다 만들기 꾸미기가 체질인 것처럼 재밌다고 즐거워했다. 실습도 잘 마쳤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만난 솔은 브랜드 피자집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유치원 교사가 되는 일은 아무래도 다시 생각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말투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것 같아서라했다.

역시 내가 우려했던 대로였다. 그놈의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목소리와 급한 성격이 문제였다.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일. 지금쯤 세월의 고운 옷을 입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아이를 달래는 베테랑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피자집 점주가 되어 우연히 마주치면 서비스로 피클 하나쯤 더 내어 줄지도 알 수 없다.


집에 매실액을 담아 둔 유리병이 있다. 솔의 부모님이 오미자청을 담아 준 병이다. 냉장고에서 그 병을 꺼낼 때 가끔 솔이 생각이 난다. 기차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목소리도 그립고 걸쭉한 아지매 말투도 듣고 싶다.

뭐가 됐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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