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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Sep 13. 2022

그깟 밥 한 끼가 뭐라고.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어요’ 우리는 이 말을 아무에게나 하지는 않는다. 정말 같이 밥을 먹고 싶거나 혹은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쓴다. 친분을 유지하거나 더욱 돈독히 하고 싶을 때 밥을, 아니 밥 먹는 시간을 이용한다. 어려웠던 사이나 서먹했던 관계도 밥을 먹으며 마음의 빗장을 푼다. 형제자매끼리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함께 밥 먹는 사람과 과거 어느 때로 추억의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밥은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희망을 꿈꾸게 한다.

내게 밥은 관계 맺음이요, 관심이며 사랑이고 때로는 위안이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고마운 이들에게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솜씨가 좋은 것도, 손이 빠른 것도 아닌 내가 누군가를 위한 밥을 차리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면서 젊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는 일도 생기고 때론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난 그 마음을 모아 두었다가 학기 말쯤 슬며시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자. ’라고 한다.  ‘고맙다’는 말도,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라는 말도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담아 건넨다.  

    

  초등학교 5학년 말 아버지의 고향으로 이사를 갔다. 친척들이 주로 모여 사는 약 40여 호 남짓의 동네였는데 생일, 제사, 김장 때뿐만 아니라 제법 먹음직한 음식이라도 있으면 아래 윗집으로 심부름을 갔다. 걸핏하면 해야 하는 귀찮음이 짜증으로 바뀌는 날은 비 오는 날이다. 우산을 들고 전 접시를 가져가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 툴툴거리는 내게 어머니는 “가다가 쏟아질라. 조심해서 다녀와”하시며 기어코 손에 들려 보내셨다. 어머니의 음식 나눔은 늘 있는 일이었다. 밥때에 누구라도 들르면 흔쾌히 수저와 밥 한 그릇을 챙기셨다. 그때는 잘 몰랐다. 왜 나이도 더 많고 촌수도 높은 어머니가 굳이 음식을 나누는지.

 어머니가 다른 이를 위해 차린 밥상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중학교 다닐 무렵 마을마다 다니며 건어물을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몸집이 작은 할머니는 자신보다 커 보이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이 집 저 집을 들렀는데 어린 내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어머니는 매번 나의 도시락 반찬거리를 고르는 동안 그분이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했다. 소박하지만 깔끔한 밥상이었다. 할머니는 가실 때면 거칠고 주름진 손으로 “고맙소, 아지매. 복 받으소”  하며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의 밥은 자신보다 큰 삶의 무게를 인 그분께 고단한 일상을 달래주는 여름 한낮의 그늘 같은 것이었을까.    

      

   십여 년 전 친하게 지낸 젊은 동료 A가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았다.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아픔을 나누면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진다. 우리는 서로 속 깊은 얘기를 하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얼마 뒤 A는  “ 언니, 나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 언니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내일 시간 괜찮아?”라고 했다.  “물론이지”  잠자리에 누우니 A에게 친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사실과 원만치 못한 가족관계가 떠올랐다. 이럴 때 A의 어머니가 계셨다면 얼마나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겠는가 싶어 마음이 짠했다. 다음 날 출근하여 A에게  “우리 집으로 올래, 반찬은 없지만 된장찌개 끓여서 밥 먹자.”라고 했더니 A는 더없이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저녁을 준비했다. 미리 시장을 본 것도 아니라 손님을 초대할 만한 밥상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A의 어머니 인양 정성을 쏟았던 것 같다. A는 아직도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더 고마워한다고.    

  결혼을 하고 다른 곳으로 전근 간 A는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지난여름 A가 가족과 함께 집 구경을 왔다.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 온 후 반려견 두강이와 잔디밭이 찍힌 사진을 보냈더니 여름휴가 길에 들른 것이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두강이 이모, 어쩌고 저쩌고' 하며 쉴 새 없이 종알대면서 아래 위층을 뛰어다닌다.  A는 “여기선 마음껏 놀아도 돼”하며 덩달아 신이 났다. 나는 10년 전 제대로 차려주지 못한 밥상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 있던 지라 제법 솜씨를 부려 한 상 차려냈다. 갓 지은 밥으로 초밥을 만들고, 전복과 새우 버터구이에 고기, 회. 평소에 손이 많이 가서 자주 하지 않는 음식까지.  A의 남편은 마침 물회가 먹고 싶었는데 입맛에 딱 맞다며 레시피를 알려 달라한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A는 전화로  ‘ 친정에서도 한번 받아 보지 못한 밥상’이라고 울먹인다.

그깟 밥 한 끼가 뭐라고.      

   

   지난봄. 집 뒤편 자드락 숲에 취나물이 자란다는 동네 분의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들어 가보니 자연산 취나물이 지천이었다.  취나물 향이 금세 온몸으로 퍼진다. 몇 번은 저녁 찬거리로 만족했지만 욕심이 생겼다. 말린 취나물 볶음은 나물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 유일하게 해달라고 하는 반찬이다. 벌레조차 적응 못한 내가 뱀이 나온다는 소릴 듣고도 취나물을 캐러 숲으로 들어갔다. 장화와 고무장갑으로 완전무장을 한 채  ‘오늘은 말릴 수 있을 만큼 작정하고 캐야지’ 하고 비닐봉지 한가득 취나물을 캐 와선 삶아서 말린다. 엄청나게 많은 것 같았는데 말리니 ‘애개개’ 겨우 한 움큼이다.  잘 말려진 취나물은 아들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품 안에 자식‘이라 했던가.’ 아들을 못 본 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 몇 달에 한 번꼴로 집을 찾는 아들은 이제 손님이다. ‘엄마 밥이 먹고 싶다’며 추석에 다니러 온다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에도 기다림이 묻어난다. 나는 보고 싶은 마음 갈무리해두었다가 취나물 한 접시에 반가움을, 방아 넣은 된장찌개와 잡채 한 그릇에 엄마 마음 가득 담아 아들의 밥상을 차려낼 것이다. 외롭고 고단했던 나의 자취 시절 방학 때면 찾았던 고향 집에서 어머니의 밥으로 마음의 허기를 달랬듯이, 아들에게도 그런 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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