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등 May 10. 2024

그녀와 막걸리 (3)

그녀와

쌍계사계곡에 자리 잡고

도토리묵과 동동주를 주문했어요

도토리 색은 같으나 진짜는 아니라고

그녀는 실눈을 뜨며 입꼬리를 샐룩거리더군요

-먹어. 어차피 진짜는 묵이 될 수 없어

다른 생이라도 이건 슬픈 말이야-

진짜인적이 없던 나는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삼키는데,

울컥 목이 메었어요


쓸 만한 종이컵 하나

다른 생에서 왔는지

우쭐우쭐 흘러와

공연히

담배를 물고 쭈그려 앉은 사내의

구두 끝을 건드려 보더군요


사내는 비벼 끈 꽁초를 종이컵에 쑤셔 넣고

눈길 한 번 없이 일어서는데,

계곡물은 흐르던 대로

바람은 방향이 없고

실없는 인연에 꽃잎 하나 붙이고

종이컵은 가다 서고 가다 서고


나는

종이컵을 건져내어 무심히 구겼네요

멀리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재즈 같은 염불이 생을 넘나들었어요





-

이전 26화 오늘 붉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