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유학생의, 한여름의 금요일 밤
퇴근길엔 한인타운에 들러 반찬거리를 살 셈이었다. 스팸, 계란을 사고자 했다. 김치는 집에 있으니 스팸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반찬으로 계란 프라이를 부칠 요량이었다. 주말에는 모두와 단절한 채 평화롭게 칩거를 할 테니까, 준비의 과정으로 식량을 확보해 오늘 밤에는 요리를 해야지.
금요일의 여름밤이었다. 바깥의 달큰한 공기가 풍경의 뉘앙스로 자리한 채 해가 저물고 있었다. 삼삼오오 그룹 지어 걷는 무리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웃음소리. 부적처럼 강렬한 레드의 전단지들은 여름의 소낙비처럼 아무도 모르게 후드득, 쏟아져 있었다. 곧이어 이음매가 없는 음들이 모여 노래가 된 노래가 환희처럼, 혹은 절규처럼 지하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금요일 밤이란 어쨌든 부단히 근면했던 영혼들의 차지라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엔 한인 타운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도시의 상징인 타임 스퀘어는 근방이었고 클래식 스타일의 파크 에비뉴는 걸음의 방향만 달리해 건너편, 그것도 아니라면 재즈와 술 내음 가득한 자유의 웨스트 빌리지는 N 트레인 10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굳이 묵은지 김치찌개를, 강호동 백정과 수박 소주를 먹자고 한인 타운에 모이는 것일까.
우린 그것들로부터 멀어지고자 뉴욕에 왔다. 도피성과 목적성을 가를 것 없이 유학의 궁극적 취지는 새것을 배우고자 하는 결단에 있으니까.
이것은 일종의 비밀 누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으로 불리우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취업한 아들과 딸이니까, 구질하고 뻔한 고국을 떠나온 자랑스러운 소수니까. 그러니 익숙한 정취가 깊게 베인 한인타운에서 불금을 보내기로 선택한다는 것, 그 선택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형태로 계속된다는 것은 버리자고 선언했던 무언가를 부지런히 붙드는 일에 가까웠다. 우리가 한인타운 밤거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언의 비밀이 동반되는 일이었다.
반찬을 담은 쇼핑백을 한 손에 쥐고 요거트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난다. 분위기도 맛도 특별할 것 없는 곳이지만 역시 장소에 색을 입히는 건 기억이 아니던가. 어쩔 수 없이 T 생각이 났다. 귀공자 같은 외모로 여자가 끊이지 않았고 고로 관계가 복잡했던 그가 그곳에서 또래의 연애 상담을 해주다가 그냥 사랑한다고 거짓말 쳐봐, 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한 말을 했었다. 그러면 어떤 문제든 쉽게 해결된다고. 아 그건 아니라고 참견하려는 찰나에 스쳤던, 허영보다는 공허에 가까운 T의 눈은 유난히 오래 남는다. 하지만 그 발언은 길이 남을 망언이긴 했고 네가 망나니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일자 터널 모양의 한인 타운을 빠져나오니 바깥은 네온의 그늘에서 벗어나 온전한 어둠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T의 발언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나 그 끝에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걸려있던 진실을 촉수로 감지한다. 어쩌면 우리가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믿고 싶은 거짓말에 불과할지 몰라. 이 도시엔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 아주 많으니까.
매일 다른 빛을 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중심으로, 길목마다 존재하는 미슐랭 맛집까지. 크고 작은 미술관과 서점은 보물처럼 발견되고, 사계절 내내 여행객이 붐비지만 그마저도 풍경의 일부가 되는 특별한 도시니까, 뉴욕은.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가 역으로 도시를 거짓말처럼 넘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본래 사랑의 팔 할은 환상에 빚을 지고 있지 않나. 우리가 줄곧 허밍 하던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의 가사처럼 오 뉴욕, 뉴욕은 유명 영화의 낭만적인 장면들로 가득하고 혹 브로드웨이 천막 아래 새겨진 내 이름을 볼 수 있으리라는 꿈을 먹고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우리는 그런 환상을 살며 실상을 가장 수고롭게 감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경계가 불분명한 애증을 품에 안고 한데 모인 우리는 한인 타운에서 불금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