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그럼에도 살아갈 것이다.

by 디비딥

# 작고 소소한


일본 영화는 유독 소소한 일상을 다루며 작은 이야기를 지향하는 힐링 영화가 많다. 한때 동아시아지배를 꿈꾸며 군국주의로 무장했던 나라이고, 지금도 여전히 한쪽에선 혐한정서나 식민지 지배시절의 향수를 지닌 과격한 국수주의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극한의 공존이 조금 낯설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작은 이야기와 힐링 장르는 집단의 이익과 번영을 강요하는 사회에 드는 피로감과 그런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개인들의 목소리가 모인 결과물인 것도 같다.


무한경쟁에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현실, 세상은 시작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에게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은 열패감에도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나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같은 말들이 유행키워드가 되는 우리의 현실도 어쩌면 같은 이치일 것이다.


영화 <<파문>>은 일본의 여성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그녀는 전작들(<카모메 식당>, <요시노 이발관>, <안경>, <강변의 무코리타> 등)을 통해 지극히 평범하거나 사회적 변방에 서 있는 인물들의 사소한 일상과 그들의 작은 연대를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중산층 여성에게 눈을 돌렸다.



# 그녀의 하루


평범한 주부, 요리코.

그녀는 남편의 코고는 소리에 눈을 뜬다. 머리를 서로 반대로 하고 잤음에도 우렁차게 코고는 소리는 결국 그녀를 새벽의 여명에 제일 먼저 눈뜨게 한다.


아직 열지도 않은 마트 앞에 그녀는 줄을 서 있다. 그녀를 포함하여 길게 줄을 섰던 이들은 마트가 영업을 개시하자마자 달려 들어와 생수를 주워 담는다. 마트의 직원은 일인당 두 병씩만 가져가라고 안내방송을 한다.

동일본 지진 발생 이후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사고로 인한 위험성은 그녀의 집안 거실에 켜진 TV 뉴스를 통해 울려 퍼진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동일한 등급이고 수돗물이며 빗물도 경계의 대상임을 뉴스는 열심히 알리고 있다. 사회적 참사가 그녀의 사사로운 일상에 새로운 공포를 깊이 심어놓아 버렸다.


가족들을 위해 밥을 차리고 집안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키는 일 외에도 그녀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그녀는 생수병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수돗물을 넣고 밥을 끓인다. 그리고 골방에 누워있는 시아버지에게 죽을 떠먹인다. 숟가락 들 힘도 없어 끼니를 해결하는 것도 며느리에게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도 며느리의 가슴을 슬쩍 더듬어보려는 주책을 떠는 시아버지를 그녀는 적당히 제지하기도 해야 한다.


그녀의 아들은 주로 소파에 늘어져 스마트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원전의 위험을 피해 오키나와로 떠난 이웃의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TV뉴스만 볼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은 마당 화단에서 물을 주다가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수돗물을 그대로 틀어놓은 채.



# 그들이 떠난 자리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바뀌었다.

남편이 도망간 사이, 주책을 부리던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스마트폰만 보던 아들은 대학진학 이후 집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그녀가 사는 집안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남편이 물을 주던 마당의 화단은 가레산스이로 바뀌었다. 가레산스이는 실제 물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크기의 돌과 자갈, 모래만으로 꾸민 일본 정원의 한 양식. 그녀는 톱니모양의 밀대로 매일 마당의 모래에 물결 모양을 정성스레 만들고 가꾼다.


공포를 전하던 거실의 TV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그녀가 매일 기도하는 제단이 만들어졌고 그 위엔 커다란 구슬과 특별한 물병(녹명수)들이 세워졌다.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원했던 이들이 사라진 공간은 그녀가 신봉하는 종교와 그것이 강조하는 영혼의 정화에 필요한 물건들이 채워졌다.


녹명수의 고귀한 물방울은 우리의 고인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사이비 교주의 대사)

정갈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신도들과 둘러앉아 교주의 설교를 듣고 함께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며 충만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돌아온다. 방사능의 위험을 피해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던 그는 암환자가 되어 추레한 꼴로 나타난다. 모두가 떠난 뒤 정갈했던 그녀만의 일상은 남편이 거주하며 방해받기 시작한다. 제단의 성스러운 구슬에 함부로 손자국을 내놓질 않나 그녀가 혼자 홀짝이던 위스키를 마음대로 마셔대기까지 한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

그녀는 어렵게 교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며 상담을 한다. 하지만 교주는 남을 저주하면 무덤 구멍이 두 개가 될 것이며 그런 마음을 가지면 영혼의 차원이 높아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관용과 용서, 그리고 자기희생이며 이를 위해 더욱 절차탁마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도와 줄 특별한 녹명수를 권한다.



선생님 생명의 에너지가 들어간 특별 녹명수예요. 고여 있는 감정도 씻어내 줄 거예요. 회원 누구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그녀가 실질적으로 드는 감정과는 저편에 있을 법한 추상의 언어와 실천을 나열하다 슬쩍 내미는 상품.

평생을 순종적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었으므로 그 어느 것도 붙잡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위로라 믿은 채 소중한 녹명수 스프레이를 받아들고 돌아온다.


하지만 특별한 녹명수 스프레이를 뿌려도 마음의 파문을 잠재우기 힘든 또 다른 일이 그녀를 기다린다.

규슈로 대학을 갔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어느 날,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자 아들 옆에는 여자 친구가 서 있다. 그들은 그녀의 당혹스러움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함께 식사를 한다. 청각장애인 여자 친구는 아들과 식탁에 놓인 녹명수를 보고 수화로 대화하며 그녀 앞에서 그녀가 믿는 종교와 녹명수를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녀는 아들의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것도, 아들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인 것도, 자신의 탐탁지 않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당당함도 모두 불편하다.


그녀 안에 일렁이는 마음의 파문들은 그녀의 가족도, 그녀가 믿는 종교도 도통 관심이 없으며 온전히 전해지지도 않는다.


그녀가 겪는 소외와 부조리함.

그녀는 왜 살아야 하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 작은 연대의 순간들


영화는 도저히 살맛이라고는 날 것 같지 않은 상황 속에 요리코라는 중년 여성을 던져 놓고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무심한 듯 관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가 일하며 만난 인물들과 그들과의 사소한 교류가 ‘살맛’의 시작일지 모른다고 사실을 슬쩍 내비춘다.


마트의 점원으로 일하는 그녀가 갱년기 증상으로 식은땀을 흘리자 청소부 아주머니는 수영을 권한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잦은 만남이 이루어지며 아주머니는 어느새 그녀가 자신의 가장 솔직한 감정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된다.



아주머니 : 바로 쫓아내버려. 남자는 봐주면 바로 기어올라.
용서하면 안 돼.
요리코 : 되갚아줘도 될까요?
아주머니 : 괜찮아. 내가 허락할게.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시지 않는 그녀의 마음을 청소부 아주머니는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지지해준다.

시아버지의 죽을 생수 대신 수돗물로 끓이고 남편의 칫솔로 세면대 하수구를 몰래 문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응어리를 소심하게 풀었던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그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단호함이었던가 보다.


그렇다고 아주머니가 그녀를 무작정 지지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요리코 : 사지 멀쩡하게 낳아줬더니 하필 그런 애랑.
아주머니 : 직설적으로 차별하네...... 다들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보고 자기보다 위라든가 아래라든가 생각할 때가 있잖아.


아들이 데려온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하소연을 늘어놓은 그녀에게 아주머니는 그녀가 가진 허영과 차별의식을 꼬집어 지적해주기도 한다.


가면 속에 진짜 마음을 숨기고 살았던 그녀는 두려움 없이 마음을 내놓고 대면하며 자신의 파문들을 스스로 잠재워나간다. 그리고 청소부 아주머니의 몰랐던 사연에 아파하고 그녀를 도우며 두려워서 스스로 썼던 가면을 천천히 벗어던진다.


웃기는 일이지? 청소부 방이 그 지경이라... 대지진이 있던 날 일 끝내고 집에 돌아가니 여러 가지 물건이 사방에 떨어져 있고 그걸 보니까 갑자기 치울 수가 없게 돼버렸어.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지만 난 그날 이후로 쭉 묻혀있는 그대로야.
(아주머니의 대사)


수영장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아주머니는 자신이 키우는 거북이를 그녀에게 부탁한다. 그녀가 집을 찾아가니 그곳은 놀랍게도 쓰레기 더미였다. 그리고 한 쪽엔 죽은 아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마냥 씩씩해보였던 아주머니의 깊은 상처에 그녀는 직접 아주머니의 집을 청소하며 그녀가 참사(지진) 이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애쓴다.

그 비싼 녹명수로도 얻을 수 없었던 생의 이유와 자립의 기분을 그녀는 자신과 다르지 않은, 외롭고 아프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며 서서히 알아간다.


삶은 꽃길일 리 없다.

세상의 뻔한 관계는 배신과 오해들로 공허를 남기기도 한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은 당최 어렵다.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

작고 구체적인 순간들을 나누고 연대할 수 있는 평범하고 초라할지 모를 이들의 공존에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런 메시지를 어깨 힘주지 않고 가볍고 엉뚱하고 코믹하게 전할 수 있는 감독은 ‘인생의 고수’임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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