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말해주면 안돼요? 저 올해가 정말 마지막이에요.”
“하-.”
에이전시 담당자의 한숨 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곤란함과 당혹함, 안타까움이 교차된 소리였다. 추현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 대한 심사결과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이번 겨울 시즌에도 자리를 따내지 못하면 모델이 될 기회를 영영 잡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에만 30여번의 패션 브랜드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단 한 곳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일반인 입장에서 추현미는 모델이 될 만한 충분한 신체 조건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172센티미터라는 훤칠한 키에 직각 어깨, 우월한 하체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추현미가 2주 전 오디션장의 런웨이를 걸을 때에도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마네킨처럼 딱딱하고 차가워 보였다. 합격자 통보 기일은 어제였다.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냈지만 아침 열시가 되어도, 열한시가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추현미는 전화 속 에이전시 담당자를 계속 추궁했다.
“이미지는 좋은데, 이번 시즌엔 조금 더 선명한 라인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
스마트폰을 타고 에이전시 담당자의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니에요 충분히 슬림하시지만 저희 요번 시즌 모델은 컨셉이...”
“그냥 얼마나 말라야 하는지 말해주면 안돼요?”
“모델 에이전시들이 모델의 특정 신체 스펙을 공식적인 기준으로 삼지는 않아요. 그런 기준을 공개하는 것도 금지돼있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일반적인 얘기를 해드릴게요.”
담당자가 작심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숫자 하나만 바꿔보세요. 도움이 될 거에요. 저희 회사 기준은 아니에요.”
“숫자라면 어떤....”
뚜-. 뚜- 뚜-.
에이전시 담당자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추현미의 몸무게는 52kg. 키에 비해 많지는 않았다. 적어도 일반인 기준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었다. 숫자 하나를 바꾸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뒷자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최소 1kg를 빼라는 말일테고, 앞자리라면, 앞자리? 40kg대가 여러모로 합격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다. 최소한 3kg를 빼야만 했다.
3kg 감량은 인간 추현미에겐 불가능한 숫자같아 보였다. 지금도 52kg이라는 숫자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늘 점심은 사과 반 조각으로 한 끼를 떼우고, 헬스장에서 유산소 운동으로 한 시간을 보낸다. 시원하게 땀이 빠져나가지만 몸이 바르르 떨리고, 우울함도 함께 찾아왔다. 트레이너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원하는 걸 양껏 먹는 ‘치팅 데이’로 쓰는게 좋다는 꼼수 처방을 해주었다. 이 처방이 추현미에겐 독이 되었다. 치팅 데이를 한번 씩 즐길 때마다 탄수화물과 당과 나트륨이 주는 쾌감이 중독성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 1회 치팅데이를 유지했지만 언제 이 주기가 깨질지 걱정스러웠다.
그 날도 추현미는 배달 앱에 손을 댔다. 한시간 후 그녀의 눈 앞엔 고급 생식빵과 보쌈과 족발, 막국수, 떡볶이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생식빵을 뜯자 혀를 거쳐 식도로 넘어간 탄수화물이 1분도 안돼 당으로 바뀌었다. 당이 핏줄을 타고 추현미의 뇌와 장기까지 퀵배송 되는데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당을 공급받은 뇌는 더 빠른 속도의 당 공급을 요구했다. 추현미의 손은 더 빨라졌고, 5분도 안 돼 식빵 한 덩어리가 사라졌다. 그나마 이 때까진 여유로웠다. 추현미의 입에 들어간 보쌈은 게걸스러운 저작과정을 거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위장으로 가는 고속 열차를 탔다. 족발을 먹는 추현미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막국수를 먹을 때가 되어서야 추현미의 손이 느려졌다. 떡볶이를 다 먹어 치울 때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잠시 후 찾아온 포만감은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곧 졸음이 찾아올 테고, 잠이 들면 오디션 합격 가능성은 더 멀어질 수 있었다. 남은 할 일이라곤 위장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일 뿐이었다. 추현미는 변기 앞에 무릎꿇었다. 음식 대부분을 게워낸 뒤에야 잠을 이뤘다.
폭식의 하루가 지나고 주말이 찾아왔다. 추현미가 습관처럼 들르는 서울 상수동 홍대 거리는 여전히 붐볐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흘끗 흘끗 시선을 보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공터 벼룩시장의 창작자 코너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코너에는 ‘미술 치료 받아보세요. 첫 손님은 무료’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초상화 3개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마른 사람, 보통 체형의 사람, 뚱뚱한 체형의 사람이 각기 다른 화풍으로 그려져 있었다.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드세요?”
화가가 말을 걸었다.
“전부 형태가 다르네요.”
“예, 전부 클래식 화풍에서 조금씩 따왔죠. 베낀 건 아니구요 전부 제게 의뢰하신 손님들 초상화에요. 설명을 좀 드릴게요.”
첫 번째 그림 속엔 바닥에 앉은 여자가 다리를 완전히 오므리지 않고, 기하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얼굴은 고개를 살짝 들어 도도한 표정으로 정면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건 에곤 실레 풍으로 의뢰받은 그림이에요. 앉아 있는 자세도 불편하고, 채색이 별로 없어서 저도 그리기 어렵죠. 붓 터치 실력이 금방 드러나거든요.”
두 번째 그림은 제법 살집이 있는 여인이 샤넬백을 들고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건 오귀스트 르누아르 풍이죠. 시간은 좀 걸리지만 손님들 만족도는 가장 높은 작품이죠.”
세 번째 그림은 과체중의 남자가 양복을 입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팔이며 다리며 몸통이며 얼굴이 풍선처럼 빵빵해 양복과 셔츠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건 페르난도 보테로 풍이죠. 자신을 이렇게 그려달라는 사람은 없어요. 이건 제 친구를 그린 그림인데, 사실 이 그림이 가장 특별하죠.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몸의 붓기를 빼주거든요”
“붓기요?”
“네, 쉽게 말하면 그림이 어느정도는 대신 살이 찌는거에요. 이 친구 체형이 실제 이렇지는 않은데, 요즘 많이 먹나봅니다. 한번 캔버스를 살짝 들어보시겠어요?”
추현미가 들어본 보테르풍 그림의 캔버스는 다른 캔버스보다 3배 이상 무겁게 느껴졌다. 화가는 175cm의 키에 70kg의 몸무게를 가진 남자를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그림이 스스로 변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림 속 피사체가 살이 찔수록 그림이 담긴 캔버스 역시 무거워 진다고 했다.
“제가 하나 그려 드릴까요. 손님 스타일은 에곤 실레와 르느와르 중간쯤이시네요. 제가 제일 잘 하는게 크로키거든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안 걸려요.”
화가의 붓 터치는 빨랐다. 1시간 30분 만에 의자에 단아한 포즈로 앉아 있는 그녀의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간결한 선과 함께 채색은 최소화 했지만 묘하게도 추현미의 내면을 꿰뚫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림은 그림입니다. 여기 너무 의지하지는 마세요. 지금 체형도 딱 좋으시니까 잘 유지하시면 될거에요.”
초상화가 거실에 걸린 후 추현미의 몸에선 미세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간혹 가다 야식을 먹어도 더부룩한 느낌이 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얼굴이 붓는 현상도 사라졌다. 추현미는 한달 후 참가한 그 해 마지막 오디션에서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림 속 추현미의 모습은 점점 변해갔다. 처음에는 그림 속 얼굴이 조금 발그레해진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옷이 몸에 꽉 끼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추현미는 불안해졌고, 그림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다용도실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러는 동안 추현미는 한국에서 진행된 사계절 패션쇼에 내리 출연했다. 건실한 기업가 청년과도 가까워져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행복이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추현미는 아침에 일어날 때바다 부대끼는 느낌을 받았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부풀어 오르고 손발이 붓는 증상도 자주 나타났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한 추현미는 다용도실에서 그림을 꺼내보았다. 그림 속 추현미는 이미 몸이 빵처럼 부풀어 있었고, 비좁은 액자 안에 돼지 한 마리가 갇힌 것 같은 모습이었다.
놀란 추현미는 곧바로 홍대로 달려갔다. 화가를 찾아 스마트폰으로 찍은 자신의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당신 때문이에요! 내 몸이 엉망이 돼가고 있잖아요. 이 그림이 더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거에요?"
화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림에 너무 의지하시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
"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하죠?"
화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그림을 더 큰 캔버스에 옮겨 드릴게요. 그럼 시간을 벌 수 있어요. 비용은 내셔야 돼요. 그래도 이제부턴 조심하세요."
추현미는 50만원을 내고 더 큰 캔버스에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화가는 추현미의 현재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 속 추현미는 100kg이 넘는 초고도 비만 여인의 모습이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물었다.
"누구를 그리는 거예요?"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을 오마주한 겁니다."
추현미는 새로 그린 초상화를 다시 다용도실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다음 날, 거울 속의 그녀는 다시 슬림한 몸매로 돌아와 있었다. 프로포즈를 받던 날, 추현미는 남편이 될 사람에게 부탁했다.
"우리 집에 방 하나는 나만의 공간으로 쓰고 싶어요. 그 방은 절대 열어보지 말아줘요.
남편은 약속을 지켰고, 추현미의 비밀은 오랫동안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밀의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물었다.
"무슨 냄새지?"
추현미는 화를 내며 방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추현미는 점점 더 많이 먹었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홍대의 화가를 찾았지만, 이번에는 화가조차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집채만 한 캔버스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제 나이와 체력으로는 그릴 수 없고, 손님도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추현미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홍대 공원을 헤매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무릎을 꿇고 하늘에 기도했다.
"제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라지게 해주세요."
그 순간, 그녀의 몸은 고운 치즈로 변했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을 한 치즈는 노란빛을 띄며 매끈하고 매혹적인 향을 풍겼다. 다음 날 아침, 홍대 공원을 지나던 사람들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놓인 치즈 덩어리를 보았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손으로 만지려 했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던 그날 오후, 치즈는 점점 녹아내리며 형태를 잃어갔다. 몇일 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자 아름다운 치즈의 여인이 녹아내렸다. 추현미는 사라졌지만 남편은 여전히 그녀를 기다렸다. 비밀의 방 문을 열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