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간첩 박강철

by 천상우

박강철은 자신의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음을 직감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3년 후 제대를 바라보는 성실한 인민군 전사였다.

"박강철 동무, 동무는 남조선 선전물 상습 열람 및 보관혐의로 기소되었소.“

리민섭 보위국장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졌다.

"저는 결백합네다! 그딴거 전 본 적도 없습니다!" 강철의 항변은 벽처럼 단단한 보위국장의 표정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보위국이 확보한 증거가 너무 많소. 강철 동무. 그동안 훈련이면 훈련, 오락이면 오락, 다 뛰어났던 우리 모범 동무가..."

강철은 자신의 위에서 늘 그를 시기하던 김소좌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김소좌가 증거를 조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된 듯했다.

"동무를 아오지 탄광에 보내긴 아깝소. 영구 군 복무... 그것이 동무에 대한 형벌이오."

강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영구 군 복무는 북한에서 사실상 천천히 죽어가는 것과 같았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으며, 가족을 볼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이 평생을 군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안됩네다. 어케 방법이 없갔습네까.”

“방법이야 있지.”

보위국장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동무에게 기회를 주고 싶수다."

강철의 귀가 번쩍 뜨였다.

"어떤... 기회입네까?"

"동무는 음악적 재능이 있지 않소? 중학교 시절 성악 경연대회에서 우승했고, 군에서도 문화대에서 공연한 경험도 있고, 일단 그.. 얼굴도 잘 생겼으니."

“가수라면 자신있습네다. 수령 동지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그렇지, 해야지. 평양에서 하지 말고 서울에서. 잘만 하면 위원장께서 모든 죄목을 사면시켜줄거요.“

"서, 서울 말입네까?"

"그렇소, 동무. 남조선의 K-POP은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수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미국, 일본, 중국, 심지어 유럽까지 침투했잖소. 우리는 이 문화적 무기를 역이용할 필요가 있수다. 아이돌이 돼라우"

"하지만 제가 어떻게 아이돌이... 저는 노래도 춤도 그 정도는..."

보위국장이 손을 들어 그를 멈추게 했다.

"걱정 마시오. 이미 우리가 포섭한 남조선 교관들이 있소. 잘 나간다는 SM, 하이브 출신 들이오. 6개월간 노래, 춤, 그리고 남한의 문화와 언어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오다."

“제가 아이돌이 되면 북에 무슨 도움이 됩네까?”

보위국장은 비밀스럽게 미소지었다.

"동무의 임무는 SM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 연습생이 되는 것이오. 그리고 데뷔할 기회가 오면, 첫 무대에서 특정 안무 동작을 취하면 되는 것이오. 아주 중요한 작전이오."

"어떤 동작인가요?“

“그건 지금 말해줄 수가 없소. 동무가 데뷔하게 되면 그때 지령이 갈 것이요. 자본주의를 박살 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오. 성공하면 영웅 대접을 받을 것이오."

6개월 간 지옥훈련이 이어졌다. 박강철은 하루 16시간 K-POP 안무를 배우고, 남한의 최신 유행어와 문화를 익히고, 북한식 억양을 완벽하게 숨겼다. 지옥 훈련은 힘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 행복했다. 보위국이 데려온 남조선 트레이너들은 프로중의 프로였다. 이들은 식단부터 피부 관리까지 모든 생활을 남조선 식으로 바꿨다. K-푸드는 기본이었다. 부대찌개부터 막국수, 제육덮밥에 한우까지, 먹지 않은 것이 없었다. 레스토랑 예절을 배운 후엔 스테이크와 와인, 위스키 등을 즐겼다. 주말에도 피자, 치맥, 콜라, 보쌈 등 자본주의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훈련은 고달팠지만 지난 7년간의 군생활에 비하면 천국 같은 지옥 훈련이었다.

박강철은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와 두 차례 신분 세탁을 거쳤다. 보위부는 박강철의 부모님이 한국계 일본 외교관 출신으로 주로 남아공 등 주요 지역을 돌며 근무했다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박강철은 박강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에서 서울로 이주했다. 서울에 안착한 박강선은 공모전에 도전해 SM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합격했다. 스스로 작사작곡한 랩과 함께 트레이닝된 춤사위는 자신이 봐도 신들린 몸짓이라고 볼 만 했다. 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해방감이었다.

평양에 낭보가 도착했다. 박강철이 'NOVA'라는 5인조 보이그룹의 멤버로 데뷔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그룹명은 '새로운 별'이라는 의미로, 다섯 명의 멤버가 각각 우주의 별을 상징했다. 강철의 팀내 포지션은 메인 댄서였다.

데뷔 생방송을 보름 앞둔 날. 강철의 숙소 문틈에 누군가가 종이 한 장을 밀어 넣었다.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왼손은 가슴에 댄 채 360도 회전한 뒤, 양손을 모아 관객을 향해 총 쏘는 동작을 하며 카메라를 향해 윙크 세 번.’

강철은 멤버들을 설득해 이 안무 동작을 넣었다. 후렴구 마지막 부분에 넣어야 더 드라마틱 할 것 같았다. 동작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강철은 임무의 성공만을 생각했다.

데뷔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NOVA'의 첫 싱글 'Cosmic Love'는 일주일 만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강철을 포함한 멤버들은 신인상을 받았다. 유튜브엔 강철의 특수임무 동작을 흉내낸 '윙크 안무' 밈이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첫 공연 이후 남조선과 북조선 사이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는 뜨지 않았다.

데뷔 2주 후, 강철은 접선책과의 비밀 만남을 가졌다. 한남동의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강철의 테이블에 백발 성성한 노인이 다가와 앉았다. 변장한 리민섭 보위국장이었다.

"잘했소 동무, 조국은 동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오. 누가 봐도 남조선 아이돌이오. 자본주의에 완벽하게 적응했소!"

"저는 언제 돌아갑네까?“

보위 국장의 온화한 표정이 굳어졌다.

“동무, 영웅이 됐는데 무슨 소리요. 동무의 진짜 임무는 이제 시작이오.”

"저는 지령대로 특수 안무를...“

"아, 그 동작은 이제 신경 안써도 되오. 그건 동무의 충성심이 그대로인지 확인하는 인증샷 같은 거요 인증샷“

강철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제 할 일은 끝난게 아닙니까?“

“동무에겐 영웅으로서 수행할 임무가 있소”

보위국장은 가슴팍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위대한 지도자 동지께서 직접 동무에게 보내신 친서이오다."

강철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었다.

"박강철 동무에게,

동무의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하오. 동무는 이제 조국의 가장 중요한 국제 경제 요원이 되었소. 동무의 임무는 앞으로 더 많은 인기를 얻어 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오. 동무의 수익금은 우리 북의 경제와 핵 개발에 기여하게 될 거요. 동무의 충성심을 밑겠소.

김정은"

강철은 편지를 여러 번 읽고서야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내래 자본주의의 개가 되라 이 말이요?”

“영웅께서 말이 지나치오. 자본주의를 깨려면 자본주의의 힘으로. 이게 요즘 당에서 말고 있는 대남 전략이오. 지금부턴 꾸준히 우리가 찍어주는 가상화폐에 투자하시오. 우리가 쓰는 거래소에 넣으면 처분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1년 후, 'NOVA'는 K-POP 업계에서 인지도 높은 그룹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작은 아시아 투어를 다녀왔고, 일본에서 꽤 큰 인기를 얻었다. 보위국장은 그해 대남공작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런칭 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계급 특진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독대 만찬에도 초대되었다.

노동당 1호 청사. 김정은이 보위국장과 함께 200인치 대형 TV로 박강철의 해외 투어 공연 영상을 보고 있었다.

“저 동무 말이요, 이제 나도 좀 헷갈리오, 북조선 사람 맞소?”

김정은이 크리스탈 샴페인을 기울이며 농을 쳤다.

“예, 저 동무 너무 완벽히 적응했습니다. 꾸준히 가상화폐 입금이 되고 있으니 충성심은 의심할 일 없습네다.”

“혼자만 북조선인이라 좀 외로워 보이는구만, 아예 북조선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을 꾸려 보믄 어떻갔어? ”

한달 후. 보위국 조사실에 12명의 군인들이 끌려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성실한 인민군 전사였다.

"동무들은 남조선 선전물 상습 열람 및 보관혐의로 기소되었소.“

그들 앞에 리민섭 보위국장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 앞에 천국 같은 지옥 훈련 코스가 대기중이었다.

keyword
이전 04화슈퍼모델 추현미의 마지막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