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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한손 Jul 11. 2021

초맘씨

극한 직업란에 왜 ‘엄마’는 없는 걸까?

초보 엄마인 초맘씨는 비교적 쉽게 임신이 된 편이다. 삼십 대 중반, 적은 나이가 아니었던 것에 비하면 감사하게도 결혼 1년 만에 자연 임신이 되었다. 입덧도 짧게 지나갔다. 물론 임신 후반기 소시지처럼 불어난 다리와 수박만 한 배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진 않았다.


임신의 고통이 100이라면
출산은 100X100

출산은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제왕절개를 했던 초맘씨는 아이를 만날 때까지는 큰 고통이 없었다. 일명 '하늘이 노래진다'는 자연분만의 고통을 모른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제왕절개 수술만으로도 충분히 신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이후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릿하다. 그날 밤 속으로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모른다.

- 와, 누가 내 배 칼로 찌른 거 아닐까? (영화 신세계 주인공 나야 나)
- 이렇게 아프다고 다들 왜 얘기 안 했어? (분명 누군가 말했겠지만, 상상했던 수준 아님)
- 이런 고통 왜 여자만 느껴야 해? (남편한테도 알게 해주고 싶다 부들부들)


출산의 고통이 10,000이라면
육아는 10000000000000000...


그토록 힘든 출산도 육아에 비하면 껌이라는 사실을 초맘씨는 조리원 퇴소 후 알게 됐다. 물론 조리원도 마냥 편하진 않았지만, 왜 그곳을 천국이라 일컫는 건지 집에 가니 알 것 같았다. 조리원에서 보낸 2주의 시간을 제외하고 아기가 50일이 되기까지 약 한 달 남짓... 초맘씨는 평생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극한의 고통(수면 부족이 주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느꼈다. 2-3시간에 한 번씩 맘마를 먹는 고귀한 생명체를 케어하기 위해 그녀 역시 인생 처음 통잠을 자지 못하는 삶을 겪으며, 인간의 수면 욕구라는 것이 정말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육아의 필수품은 커피, 맥주
+ (한가한) 친정 엄마 + (말 잘 듣는) 남편


낮에는 커피 밤에는 맥주를 반복하는 삶이었다. 이런 게 육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이것도 단유 후에나 가능한 사치...) 그리고 육아의 필수품은 시어머님도 남편도 아닌 무조건 친정엄마뿐이라고, 초맘씨는 생각했다. 좀비와 같은 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끄럽지 않은, 언제든 내가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내 딸보다 내 안위를 더 걱정해줄 유일한 사람은 '원 앤 온리' 엄마뿐이라는 걸 엄마가 되어보니 더 잘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내의 안위보다 딸의 안위가 우선일(말은 안 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남의 편'은 아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남보다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호르몬의 영향이었던 걸까? 연애부터 신혼 시절 내내 초맘씨는 남편과 거의 싸운 적이 없었지만, 아기가 태어난 후 1년 정도까지 정말 미친 듯이 서로 으르렁거렸다. 물론 중간중간 아이가 주는 놀랍고 경희 로운 기쁨 속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한 하나 됨을 느끼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싸움을 할 때면 매번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도로 싸워댔다. 왜 그랬을까?

...

1번 : 둘 다 너무 피곤해서

2번 : 서로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겨서

3번 : 아이가 자라듯 부모도 자라는 과정?

...

모두 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너무 피곤했고, 너무 서툴렀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 책임감과 부담이 주는 무게를 서로를 할퀴며 털어냈던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남편도 그녀도 모두 성장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랄 때
부모도 같이 자란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난 지금, 초맘씨는 더 이상 남편과 싸우지 않는다. 부부싸움에도 패턴이 생기면서 조짐이 보이는 순간 서로 조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때보다 나이를 먹은 그들은 싸울 체력도 줄어들었다. 특히, 그녀가 복직을 한 이후로는 더더욱 싸울 체력도 시간도 사라져 열 받으면 그냥 잔다. 아니 열 받을 사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잠에 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 제법 말을 잘하는 초맘씨의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나랑 셋이 00 할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리고 아이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셋이 나란히 걸을 때면 초맘씨는 가정이라는 조직이 주는 끈끈한 무엇(?)때문에 마음이 뜨끈해지곤 한다.

하지만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는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우보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사실. 게다가 하루의 피로가 아이의 미소 한방이면 씻은 듯이 날아간다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도 완전한 ‘뻥’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실감하는 초맘씨였다. 물론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순간은 찾아오지만, 그렇다고 육체의 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한때 이름 대신 '산모'로 불렸었고, 이제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러운 초맘씨. 아직도 생경한 출산과 초기 육아의 고통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다고 말하는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를 또 낳을까? 아마 대답은 ‘YES’라고 본다.

하지만 아이가 결혼의 필수냐고 묻는다면? 그건 ‘NO’다. 아이가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주는 행복에 부과되는 책임과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 굳이 낳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단, 이 사실을 아이를 낳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초맘씨 같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운명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매일 아이와 함께 뒹굴며 울고 웃는 초맘씨, 그녀는 오늘도 앞으로  웃는 날이 더 많으리란 기대 같은 걸 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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