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몰입감이 상당하다. 영화는 크게 4 부분으로 나뉜다. 1부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출입국 세관 직원인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후각으로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기묘한 능력과 남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로 세상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게다가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는 치매에 걸리셨고, 반백수로 그녀의 집에 얹혀사는 남자 친구 롤랜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수상한 짐을 가득 든 남자 ‘보레(에로 밀로노프)’가 나타나고, 후각을 통해 범죄자임을 직감한다. 이상하게도 그의 짐은 문제없다. 얼마 뒤 보레가 다시 출입국 심사대에 오르고, 동료직원이 그를 몸수색 끝에 두 가지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가 여성의 성기를 갖고 있는 점과 엉덩이 위쪽에 큰 상처가 있다는 걸 말이다.
티나는 이에 깜짝 놀라며 심문실로 다가간다. 여성임에도 남성기를 지닌 그녀는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터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더 호기심이 일었다. ‘보레‘에게 “당신은 누구죠?”라고 묻는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당신과 닮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요?”와 같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이상 염색체로 인한 기형아라고 누누이 들어왔었지만, 그래도 좀처럼 납득할 수 없었다. 실제 그녀는' 기형'이라는 콤플렉스로 인해 자기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녀가 외딴 숲 속 오두막에 기거하는 이유도 그렇다.
보레는 티나가 자신과 같은 ‘종족’ 이라고 답한다. 인간들에 의해 핀란드로 피난 간 ‘트롤’이라며 엉덩이에 난 상처는 인간들이 꼬리를 잘라내서 생긴 '흉터'라는 생물학적 증거를 들이민다. 참고로, 북유럽의 트롤은 우리로 치면 ‘도깨비’ 같은 나쁜 요정이다.
티나는 보레를 동족으로써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를 하숙시키고, 그동안 함께 살고 있던 인간 남자 친구 롤랜드를 자신의 집에서 쫓아낸다. 그리고 그녀는 서서히 ‘트롤’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된다. 마침내 트롤의 터전인 자연에서 첫 경험을 한다.
출입국 직원인 티나와 국경을 오고 가는 보레, 그리고 빈둥빈둥 노는 인간 남자 친구 롤랜드를 통해 유럽 난민 문제를 상징했을 뿐 아니라 남녀의 성기를 전복시킴으로써 젠더 갈등을 이중으로 직유 한다. 그렇게 1부는 로맨스를 통한 성장영화 형식으로 끝맺는다.
2부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아버지로부터 그녀의 친부모는 인간들의 실험으로 돌아가셨고, 그 병원에 근무하던 경비원이었던 지금의 부친이 그녀를 키웠다는 것이다. 티나는 고백을 다 듣고서 아버지의 식탁 앞에 놓인 접시를 빼앗음으써 트롤을 학살한 '인간에 대한 원망'을 표출한다.
한편, 후각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읽는 능력으로 인해 경찰과 아동포르노에 관한 합동수사에 투입된다. 아동성애자를 체포하면서 ‘어린 동족을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에 인간에 대한 혐오가 깊어진다. 인간에 대한 증오가 깊어질수록 반대로 트롤에 대한 애정은 깊어진다. 여기서는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공간 ‘집’에 사는 인간과, 자연과 벗 삼은 트롤을 또 한 번 대비시킨다. 환경에 관한 어젠다를 더함으로써 3중의 메타포를 덧씌운 셈이다.
2부의 명장면은, 출산을 앞둔 옆집 이웃을 태워주고서 병원 정문 앞에서 들어가길 머뭇거리는 대목에서 인간과 트롤을 나누는 경계를 명확히 보여줌과 동시에 사회화를 거치며 평생을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티나가 정체성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을 영화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2부는 긴장감이 상당한데, 수사과정을 다루기에도 그렇지만, 티나와 관객 모두 보레에 대해 아는 정보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미스터리’라는 카드를 매만지며 티나의 성장을 다룬 중심 서사와 범죄 수사의 서브플롯을 교묘히 포갠다.
물론 감독은 굉장히 친절하다. 아이가 태어나서 티나가 옆집을 방문했을 때 문득 보레가 펜(냄비)을 빌리는 장면에서의 보레가 던지는 대사들, 한밤중 인기척을 느껴 잠에서 깬 티나가 보레를 창문을 경계로 섰음을 미래의 파국을 암시한다.
여기까지 1부와 2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까지는 북유럽 트롤 신화가 자연과 인공이라는 환경적 대비로 국한됐다면, 3부부터는 나쁜 요정 트롤의 아기 바꿔치기(체인질링) 악행을 다루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윤리적 딜레마를 던짐으로써 영화가 180도 달라진다.
앞서 복선을 회수하면서 결국 보레가 아동밀매조직과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준 사람이자 함께 자연을 벗 삼아 사랑을 나눴던 상대가 '범인'이라는 아이러니는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알려준다. '트롤'이라는 동족 의식에다 연인이라는 특수관계가 결합하자 티나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감독은 한발 물러나 관객들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의 가족, 연인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냐고?”질문을 던진다. 일찍이 칸트가 지적한 바대로 우리는 어떤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으로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꿰뚫는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이 여자라면 <82년 김지영>을 옹호할 것인가? 아니면 남자라면 거부할 것인가?’와 치환되어도 일맥상통한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국적, 성별, 지연, 혈연, 학벌 등과 같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윤리학에서는 이를 ‘가언 명령’이라 칭한다. 칸트조차 절대선이란 없고 선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뿐이라며 ‘정언(조건 없는) 명령’에 따를 것임을 주장한다.
다행히 우리 주인공 티나도 자신의 정언명령(양심)에 따른다. 인간이고 트롤이고 자시고 간에 아이를 유괴하는 것은 나쁘다고 티나는 판단 내린다. 그래서 보레가 은밀히 만나자고 하는 여객선에서 티나는 경찰을 대동하고 그를 체포하려 나선다. 여차 저차 해서 보레는 수갑을 찬 채로 바다로 탈출해버리며 영화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영화내내 보레는 트롤을 잡아 실험하고, 학살한 인간들에 대한 증오로 인간세상을 등지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렇다고, 동족들이 있는 핀란드의 트롤 마을에 정착하지 않고, 인간 아기들을 바뀌치며 자기 방색대로 복수를 행했다. 반면에 티나는 사회화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인간세상에 적응해왔다. 번듯한 직장에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보유하지 않았나? 그런 차이가 컸는지 보레가 주장하는 '인간은 자신들의 이기심을 위해 모든 걸 파괴하는 기생충'이라는 의견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중에도 선한 자들이 있음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티나를 증오가 가져온 편견에 갖히지 않고 선한 의지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 격인 4부가 진행된다. 어느 날 티나에게 상자 하나가 도착한다. 그 속에서는 티나와 보레가 함께 만든 창조물이 담겨있었다. 여성임에도 출산을 할 수 없는 그녀에게도 자식이 생겼다. 그리고 핀란드 여행 엽서가 동봉되어 있다. 이제 티나는 아이를 데리고 핀란드로 갈까? 아니면 스웨덴에 머물까?라는 의문을 남기며 영화는 끝난다.
끝으로 티나의 직업도 흥미롭다. 출입국 공무원은 국경과 국경 사이를 감시하는 역할이 아닌가? 여기서 제목이 얼마나 직설적인지 대변해준다. 그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누구나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서 <경계선>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알리 아바시 감독은 이란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성장했지만 국적은 스웨덴인이다. 성장과정에서부터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입장에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 외부조건에 따라서 선과 악이 뒤바뀔 수 있다고 (영화를 통해서) 주장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들 ‘미(美)와 추(醜), 인간과 트롤, 남과 여, 집과 자연’처럼 경계를 나누고, 구분짓는데서 갈등, 차별, 멸시, 증오 등이 발생한다는 노자의 손을 들어준다. 총평하자면 <경계선>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인식의 문제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윤리적 문제까지 트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겠다.
★★★★★ (5.0/5.0)
Good : 미스터리가 끝나도 이어지는 윤리적·사회적 물음
Caution : 시각적인 생경함과 충격으로 시선을 끄는 방식
●두 주연배우가 한 두꺼운 얼굴 분장은 올해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
●칸트는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어쩌면 없지만, 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윤리(도덕)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사회갈등은 풀기 쉽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입장에 따라서 변하는 가언(조건 있는) 명령 대신에 보편적인 양심과 선의지에 의해 정언(조건 없는) 명령에 따르라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