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더위가 습기를 머금고 몸을 덮나 싶더니 늦은 오후쯤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에 떨어진 물방울이 빗방울 같지 않게 굵고 무거워서 놀랄 틈도 없이 옷 속으로 휴대폰을 숨겼다. 호스텔까지는 거리가 있어서 피할 곳을 찾다 길게 늘어진 나무 아래로 달렸다. 나무 아래는 이미 비를 피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득실거렸고 미처 마르지 못한 땀과 물이 섞여 시큼한 냄새가 돌았다. 축축한 팔들이 부대꼈고 부딪히지 않게 몸을 모아 보지만 그 틈을 채우는 건 비를 피해 나무 아래로 들어온 사람들뿐이었다.
여기도 비가 내리니 비 냄새가 난다. 비와 땅이 만나면서 나는 냄새였다. 비 오는 날이면 코를 맴도는 비의 향이 좋았다. 어떤 곳을 가도 비가 내리면 같은 냄새가 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이든, 인도든, 파리든, 아스팔트 위에 빗방울이 떨어졌는데도 묘하게 흙냄새가 났다. 비를 피해 나무 아래 있으면서 아주머니들은 바닥에 끌리는 칸 도라를 집어 올렸다. 바닥을 적신 빗물이 칸 도라의 밑단을 적셨다.
사막에 가기 전, 사막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야 했다. 진짜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막을 누리기 위한 물품들이었다. 그중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모로코의 전통의상인 칸 도라와 질레바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이들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이왕 살 거면 마음에 드는 옷을 사겠다는 일념으로 온 메디나를 헤집고 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가격표가 붙어있었고, 더 받으려는 자와 덜 주려는 자의 싸움은 도무지 줄어들 틈 없었다. 가격이나 디자인,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쿨한 척 돌아서기를 여러 번, 밤 열 시가 넘을 무렵, 마지막으로! 하는 마음으로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미련을 버릴 때 비로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대체 누가 했는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칸 도라를 발견했다. 가격도, 디자인도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런데 그 칸 도라는 거인이 입는 칸 도라라도 되는 건지 밑단이 바닥에 질질 끌렸고, 아저씨는 걱정 말라며 무료 수선을 해주겠다고 했다. 시장 구석에 있는 수선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라 문이 열려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수선집 할아버지는 자리에 있었다. 상점 아저씨가 사정을 설명했더니 할아버지는 안경 너머로 칸 도라를 한 번 보시고는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할아버지는 가위와 바늘을 가지고 한 땀 한 땀 손으로 직접 수선해 주셨다. 그 덕에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캐리어의 짐이 수 없이 바뀌어도 칸 도라만큼은 버릴 수 없는 추억의 옷으로 남았다.
갑자기 내린 비에 젖은 칸 도라의 밑단을 집어 올린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니 떠올리지 않아도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이건 다 셰프 샤우엔에 비가 내려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