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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Sep 11. 2024

생각해


쓰다 보면 그릴 수 없는 게 더 많았다
조금의 용기를 덜어 호기롭게 다가선 날, 그러나 아쉬움 뒤로 하고 홀로 걸어 나온 일이 많았다
난 왜 여태 쓰는가
사랑하노라고 말하는가
어쩌다 스치는 당신의 까만 두 눈, 정오의 오가는 길에서 나누는 정다운 한담, 그 짧은 조우에 몰두해 큰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실로 나날이 커져가는 마음이었다
너를 아는 일은, 내 나름대로 허다한 일을 겪었지만 정말은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일이랄까
까만 밤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시를 적고 싶었고 그만큼의 유였던 당신이었다
당신이 안겨오는 걸 상상했고 사랑하기도 했고 그러다 깨나고 홀로 서서히 침잠한다 -널 사랑한 대가라도 치르듯-
저 밤의 깊숙한 곳에서 눈을 뜨곤 했다

어젯밤 마신 맥주병에서 지릿한 냄새가 났다
술 먹을 때나 또 그때 드는 감정들은 이 남은 잔여물만큼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것이었다
오늘도 당신을 그리는 날이었지만 결국 어설픈 글이나 다가 또 이럭저럭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이 글의 어느 즈음이면 당신을 깨닫게 되어 당신의 부재에도 이 하루와 감정들을 넉넉히 그릴 수 있게 될까
하지만 내 표현은 궁색했고 조금은 지쳐있고 그럼에도 마음만 들썩이며 날 채근한다
나는 시인이었다
많은 글을 썼고 앞으로도 쓸 테지만 그러나 그게 뭐 별 건가..

흔들리고 흰 종이 위에서 서성인다
가만히 불을 켜고 또 한 번의 늦은 밤, 종종 들리는 인기척에 창문 너머를 바라다보기도 한다

시인을 스치우는 건 하늘 위 떠있는 별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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