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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Sep 25. 2024

진정 바라건대


사랑이라 불렀던 것들 너무 아름답기에 다 담을 수 없던 날들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분명히 그 계절은 있었다
지나와 추억할 때면 영롱히 빛을 발하기에 새삼 놀랍고 그게 다 믿기지 않았다
너와의 여름밤 달뜬 우리의 나날
우리는 나란히 걸었고 누군가 애써 가꾸었는지, 길가 화단에 샛노란 달맞이꽃이 줄지어 피어 있었다
달맞이꽃은 그 빛깔 자태만큼이나 참으로 어여쁜 이름이지 않나
손으로 살며시 톡톡 쳐가며 장난하고픈 이름이다
바람이 일부러 오가며 연녹색 꽃줄기를 흔들고 있었다
너도 나도 그만 취해 흔들거렸다
그래도 되었고 그래도 좋았다
너를 안고 우리는 청춘이었고 달빛 아득히 밝고 넌 일찍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고 내겐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었다

넌 잊지 못할 향을 가진 여자
흐르는 듯한 검은 머리칼의 여인
취해있었고 감감히 아득하였고 이 모든 날의 한가운데 서있는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널 안고 싶다는 생각만 줄곧 하고 있었고 그러하기 전까진 떨치지 못할 것 같았다
별이며 달이며 이 도시의 야경이며 밝게 빛을 내는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순간.
우린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다
무엇이 글일까 나는 생각한다
이 순간의 널 그리지 못한다면 난 영영 글을 쓰면 안 됐다
넌 지금 최선의 너이고 난 가슴에 펜 하나를 가지고 있고 지금 첫 운을 떼기만 하면 되었다
천천히 유영하다 어떤 때에 몰아쳐 그릴 것이다
내 글에서는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고 이윽고 개이고 더욱 푸른빛 하늘이 뜬다
 여름 너와의 사랑이 실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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