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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 Sep 28. 2024

눈물보다는 그리운 날들


찬란한 날들은 빨리도 지나간다
홀로 아련히 추억하는 게 남은 일
나와 함께 했던 그대들도 하루 정도는 이 그리움들을 떠올렸으면 했다
추억하는 날에 빛나는 게 어디 한둘일까
따분하기만 하던 까까머리 학창 시절 내 작고 낡은 원목 책상 위에도 정오의 햇살은 서려있었다
너를 위해 노래를 쓰고 싶었고 기타를  싶었다
넌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큰 눈을 가진 소녀.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에는 조그만 꽃핀이 꽂혀있었다
난 널 좋아했고 아니 정말은 어린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고 단지 함께 기다랗게 이어진 푸르른 교정을 걷고 싶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너의 단짝이 날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을 야속하게도 네가 대신 전했다
아무 감정 없이 너에게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던 것 같다
아무것 아닌 듯 어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마음을 전해온 것과는 무관하게 난 어쨌든 장난을 좋아하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제일 좋은 철없는 소년.
모든 걸 그날의 숙제처럼 미루는 걸 좋아했다
날 좋아했던 소녀도 그의 단짝인 너도 적잖이 실망했던 것 같다
너와의 사이도 점점 멀어짐을 느낄 때쯤 마지막 학년이 찾아왔다

그리워하게 될 건 이 공간이 아니었다
이 공간을 뛰어다니고 웃음 짓던 그대들. 크게 다투다가도 그때는 참으로 용서가 쉬었다
넌 졸업사진을 찍던 그날도 단발머리에 작은 핀을 꽂은 내가 좋아했던 모습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다
이날만큼은 네 옆에 서고 싶다고.
어색해서 웃고 무안해서 웃고 울 수 없어서 웃고 솟구치는 감정에도 웃음으로 무마했었던 것 같다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시절이었을까
덕분에 너와 지낸 게 몇 해에도 네 사진 한 장이 없다

단지 그것이면 되었는데.
사진 속의 우리는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이유로 웃고 있었고 바래어가는 나도 너도 손으로 천천히 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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