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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이 문장이었기를

by 김필


시를 쓰고 싶었다
실은 지난한 글줄로 한숨 어린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으면 더하지 않고 차라리 잠을 청했어야 했다
도무지 당신이 떠오르지 않는 날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순간을 덧칠해 치장하곤 했었다
내 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거짓이라 터무니없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나무토막들을 놓고 아무렇게나 찢겨 불쏘시개로 쓰여도 좋을 시편일터
단 한편 그것인 적 없기에, 벌써 오래전 의연히 내려놓은 마음이다
내게 있어 시를 쓰는 것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관습적인 것이리라
어느 문장이 당대의 명문이런가
미약한 아침을 깨우고 밤이면 별빛 자리한 곳까지 이끌어줄까
시는 잠자고 우린 더이상 시가 필요치 않은 것일지도..
누구를 질타할런가
다만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안쓰러울 뿐이다

난 펜을 차마 꺾지 않는다
표현하고 싶은 늙은 어미가 있고 같이 나이 드는 형제가 있고 봄이 있고 산들거리는 들꽃이 피어난 길을 걸어 동산의 정상에 오르곤 하기에
눈물이 주름져가는 눈가에서 마른 지 한참이지만 작고 유약한 것에 종종 마음 쓰이기에
아무런 때 흔들리기에
난 쓴다
쓸 것들을 생각하고 흐릿함 속에서도 문장을 띄우고 계절 가운데 움직이는 것들을 마음에 품는다
언제나 그릴 수 있을까
당신을 적어 내려 간지 10여 년이지만 당신에게 다니러 간지 하세월이건만 단 한번 밝히 말하지 못했다
고맙다
덕분에 글을 쓴다
덕분에 별난 시간들이다
이 말을 해주고 싶은 늦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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