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 들고 삼만리

정신 똑바로 차리자!

by 소정


3주 전 즈음이었나?

우리 집 전기밥솥이 말썽이었다.

밥이 다 되면 '삐익~ 취익~~'하면서 김이 빠져야 하는데,

'푸시~~'하면서 김이 옆으로 샌다.

밥은 윤기를 잊어버린 채 푸석푸석해지고 찰기가 없어졌다.

"아빠~ 밥이 맛이 없어요. 딱딱해..."

밥에 진심인 둘째의 실망 섞인 반응에 전기밥솥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쿠쿠 A/S 센터가 어디에 있지?'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보니 우리 동네에는 없고 대전광역시에 있단다.

'어디 보자. 10분 정도 걸어서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나와서 약 5분 정도 걸으면 되는구나.'

약 한 시간 남짓의 거리이기에 다음날 전기밥솥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A/S센터는 항시 붐비기에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하려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다.

'잠깐만.... 출근 시간에 움직이어야 하잖아.'

운동복 차림에 밥통을 안고 버스를 타는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 같았다.

화이트 셔츠에 슬랙스 바지를 입고 직장인용 백팩을 메고 코스트코 장바구니에 전기밥솥을 담았다.

'이 정도면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는 회사원처럼 보이겠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무거운 밥솥을 들고 여느 직장인처럼 바쁜 척을 하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서 '대전 쿠쿠 A.S센터'에 도착했다.

'단번에 잘 찾아왔군. 오늘 일진이 좋은데?'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찾아간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A/S센터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쿠쿠 A/S 센터입니다!'

'그래! 쿠쿠 A/S센터지. 오늘부로 윤기가 촬촬 넘치는 맛난 밥을 가족에게 선사해 줄 곳이지!'

"안녕하세요? 저희 집 밥솥이 김이 옆으로 새면서 밥이 푸석푸석해지네요."

"아. 그럼 밥솥을 보여주시겠어요?"

장바구니 안에서 밥솥을 꺼냈더니 점원 왈.

"손님, 이 밥솥은 '쿠쿠'가 아니라 '쿠첸'인데요?"

엥? '쿠쿠'가 아니라고? '쿠첸'이라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왔네요."

얼굴은 벌겋게 붉어진 채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쿠쿠'가 아니라고?

밥솥을 보니 'CUCHEN'이라고 정가운데 글자가 크게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쿠첸'이었다.

수년간 매일 밥을 지으면서 '쿠쿠'라고 생각했다니...

'이런 바보 같은... 집에 갈까? 그래도 나온 김에 고쳐야겠지? 그래. 가족들에게 밥솥을 고쳐오리라 했으니 고쳐야지!'

스스로 다독이면서 쿠첸 A/S센터를 검색했다.


'쿠첸 A/S센터'는 세종에 있었다. 심지어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아... 어쩐지 오늘 일진이 좋더라니...

나는 다시 무거운 밥솥을 안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쿠첸 A/S센터 세종점'으로 갔다.

밥솥 수리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밥솥을 두 손으로 안고 터벅터벅 집으로 가면서

30분이면 해결할 일을 광역시를 넘나들며 3시간이 걸렸다.

'진정한 뻘짓이 이런 거구나...'

누구를 탓하랴. 다 내 탓이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우리 집 밥솥이 쿠쿠가 아니라 쿠첸이었어. 심지어 쿠첸 서비스센터는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라 카트에 끌고 갔다 오면 되는데..."

아내에게 하소연을 하는데 아내는

"안 그래도 쿠첸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 이야기할까 말까 했는데, 쿠첸이었구나."

응? 쿠첸 같다고 생각했다고? 그럼 나한테 미리 이야기를 해줬어야지! 한 번만 확인했더라면 아니 오늘 아침에만 확인 해더라면

나는 밥솥과 함께 광역시를 넘나드는 험난한 여정을 할 필요가 없었잖아!

"여보, 그럼 이야기를 해줬어야요? 이거 당신이 사지 않았어?"

아내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더니,

"몰라. 당신이 한 번 더 꼼꼼히 확인했어야지!"

아... 그래...


집에 있는 전기밥솥의 이름을 꼭 확인해보시기를...

'쿠쿠'는 영어로 'CUCKOO'

'쿠첸'은 영어로 'CU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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