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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15화
아내와 두 딸이 집을 나갔다.
by
소정
Oct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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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두 딸이 집을 나갔다!
파주에 있는 처가로...
제목처럼 부부싸움이나 가족 내 불화는 아니다.
방학 때 5일 정도씩 아내와 아이들이 처가에서 놀다 온다.
그렇다는 건... 5일 동안 나는 '자유'라는 뜻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우와~ 좋겠다!', '부럽다!'의 반응을 보일 것이고
특히 온 맘 다해 부러워하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아마 누군지 예상을 할거라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자유'에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처럼
아내의 출타에는 내가 해 내야 할 일들이 있다.
"여보! 나 갔다 올 때까지 이거 다 해놓아야 해요."
아내가 내가 할 일 리스트를 적어 거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는다.
1. 쓰레기 분리수거하기
2. 이불 빨래하기
3. 화장실 청소(특히, 곰팡이와 줄눈의 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하기
4.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5. 낡은 책상과 의자 폐기물 스티커 붙여 해당 날짜에 버리기
6. 바닥 미싱 하기
7.
내
옷 정리하기
8. 그 외 아내가 생각나서 전화로 지시하는 것 등 등
"네.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 보고 싶을 거예요..."
최대한 서운하고 슬픈 표정과 목소리로 가족을 배웅한다.
"치~ 거짓말~ 좋으면서!"
아내의 넘겨 짓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뭐가 좋아. 가족이 떨어져 있는데... 당신이 시키는 일 열심히 해 놓고 있을게요!"
다시 한번 표정관리를 해주고 눈에서 멀어지는 가족을 확인한다.
"흐음... 5일이라... 좋구먼."
일단 편한 복장(트렁크 팬티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으로 갈아입고
탄산수를 한 잔 들이켠다.
'이 5일을 어떻게 보내야 잘 보내지?'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
"아! 맞아! 일단 아내가 준 숙제부터 해결하자!"
자고로 숙제는 빨리해야 여유로운 내 시간을 만끽하기에 리스트를 살펴본다.
"그래! 할 수 있어!"
1일 차,
우선 방 전체를 정리하고 청소기로 꼼꼼히 청소를 한다. 그다음 물걸레로 구석구석 걸레질을 한다.
군필자답게 매직블록과 치약을 사용해서 바닥 미싱 작업도 했다.
'이게 우리 집 맞아?'
반들반들하고 번쩍번쩍한 바닥을 보니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내가 많이 움직이면 다시 더러워지니 이동 반경을 줄여야겠어.'
거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약 2평 남짓의 공간에서 모든 생활을 하기로 했다.
이불도 갖다 놓고 노트북, 태블릿 PC, 그림도구를 올려놓는다.
'여기에서만 움직이면 아내 오는 날 2평만 청소하면 되니까 효율적이야!'
내가 대견스럽다.
2일 차,
'오늘은 빨래를 해야겠어.'
세탁기에 우리 가족 옷들을 넣고 빨래부터 돌린다. 약 2시간 후 빨래를 건조대에 넌다.
"이불도 빨아야지!"
이불과 배에 피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2시간 후 널어야 하는데...
"앗, 건조대가 만석이야!"
부랴부랴 집에 의자란 의자를 꺼내 일자로 연결해서 이불을 넌다.
'벌써 저녁이잖아! 아.. 피곤한데... 대충 때우자.'
저녁으로 라면을 먹고 생각난 김에 싱크대 물때를 제거하고 광도 냈다.
'오늘도 바쁜 하루였어!'
3일 차,
눈을 뜨자마자 빨래를 개고
계절에
맞게 내 옷도 정리했다.
이불도 잘 개어 침대 위에 살포시 얹혀 놓고 배에 피도 가을 가을 한 느낌으로 교체했다.
'자...
이제
끝났나?'
'책상이랑 의자도 버려야 해!'
책상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문을 통과시켜 밖으로 보냈다. 문제는 1층 현관에서 재활용장까지의 이동인데...
집에 있는 카트에서 바구니를 분리하고 그 위에 책상을 놓고 옮겼다.
"역시 난 생각하는 지성인이야."
책상과 의자에 대형폐기물 스티커를 붙이고 났더니
벌써 저녁이다.
'잠깐만... 나 3일 동안 집안일만 한 거잖아!'
이제야 현타가 왔다. 억울한 마음에 세계맥주 4종 세트와 새우깡을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집안일이고 뭐고 맥주 먹으면서 넷플릭스 볼 거야!'
스스로 자유를 만끽 하노라 다짐하며 영화를 틀었다. 맥주 한 캔을 까서 시원하게 목에 쏟아부었다.
"크아~ 이 맛이지!"
그러다 눈을 떠보니 그다음 날 아침이었다. 맥주 세 캔은 따지도 못한 채 식어있었다.
4일 차,
"이럴 순 없어. 오늘은 나머지 숙제 다하고 1박 2일 동안 나만의 자유를 만끽할 거야!"
스스로에게 크게 다짐하며 쓰레기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즉시 밖으로 내 보냈다.
'이제 화장실 청소만 남았지!'
최소한의 옷만 갖춰 입고 욕실 청소 용품 풀세트를 장착했다.
솔와 칫솔로 구석구석 온 힘을 다해 닦았다.
'이거 군대 신병 같은데?'
아내의 숙제를 하는 동안 자꾸 군대에 온 기분은 뭐지?
아내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아빠~~ 여기 너무 재미있어요!"
영상통화 속에는 물놀이를 하며 환하게 웃는 두 딸이 보였다.
"여보, 혼자 있으니까 좋아?"
아내의 말에,
"아... 혼자 있는 게 좋은 게 아닌 것 같아."
지친 눈빛으로 진심을 다해 아내에게 말했다.
"치~ 좋으면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놀 거잖아요. 내가 하라는 건 다 했어?"
'헉!'
"다 했어! 다 했어! 숙제 너무 많아!"
나는 우리 딸들처럼 아내에게 울분을 토했다.
"잘했네~ 내일 봐요!"
'뚝...'
뭐야. 내일이면 오는 거야?
내가 하려고 했던 그림 그리기, 드라마 보기, 게임하기는?
그럼 24시간도 채 남지 않은 거야?
5일 차,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오는 날이다.
전날 밤새워 놀기로 한 나는 불혹의 저질 체력을 실감하며 앉은 채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그동안 숙제한 게 억울해서 최상의 상태를 보여줘야겠다는 일념 하에 몸을 움직였다.
2평 남짓 사용한 공간에 빈 맥주캔과 과자 부스러기 등등을 정리하고
다시 한번 청소기로 전체 구석구석 돌렸다. 내가 사용한 공간은 2평 남짓이지만 4일 동안 먼지는 온 구석에 있다는 걸 깜박했다.
청소기를 돌렸다면 당연히 걸레질도 해야 하고 걸레질을 했으니 걸레도 빨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와야 할 시간이다.
"아빠~'
멀리서 아이들이 웃으며 반긴다.
"여보~ 잘 쉬었어?"
아내의 말에 순간 욱했지만
"당신 숙제 열심히 했어!"
라고 답했다.
집에 온 아내가 한 바퀴를 순시하시고
"숙제 잘했네! 고생했어요!"라고 말한다.
'무슨 집안일이란 집안일을 다 나한테 맡기고 놀다 오니 좋아?'라고
따지려고 했지만 순간 아내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 정말 열심히 했어. 그러니까 오늘 짜장면 사줘요!"
"알았어요. 짜장면 먹으러 가요!"
앗싸! 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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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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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13
둘째에게는 비밀은 비밀이 아니게 된다.
14
밥통 들고 삼만리
15
아내와 두 딸이 집을 나갔다.
16
너희가 겪는 일의 첫 순간에는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17
꽉 잡아 준 둘째의 손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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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바람길 여행을 떠났다
저자
일상 속 공간과 풍경을 그리고 글을 담습니다. 여행드로잉에세이 <우리가족은 바람길 여행을 떠났다 >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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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통 들고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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