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메뉴를 검색했어야 했다.
잠깐 졸았다.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사실, 그리고 주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어찌 됐든 비행기는 대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대만에 못 가는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때 기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승객이 탑승하지 못해 짐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괜히 마음이 아쉬워졌다. 여행을 위해 짐까지 챙겨 공항에 왔을 텐데, 출발 직전에 어떤 일이 생겼을까. 나이도, 성별도, 국적도 모르는 사람의 사정을 혼자서 이리저리 상상해 보았다.
잠깐의 잡생각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떠난다.’
옆자리에는 아들이 앉아 있었고, 앞자리에는 아내와 딸이 앉아 있었다. 이번 여행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오래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혹시 내가 지치고 힘들어지더라도, 내 욕심으로 여행을 채우지는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했다. 채우지 못한 욕심이 있다면 다음 기회를 만들면 된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상황은 그대로였다.
시계를 보니 약 30분 정도가 지나 있었고, 우리가 탄 비행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40분쯤 지나서야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이륙하고 나서야, 40분 지연 출발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일정에는 약간의 여유를 두어 계획해 두었지만, 현지에서 픽업하기로 한 와이파이 포켓 수령 시간과 호텔 도착, 그리고 예약해 둔 투어 시간에 영향이 없는지 다시 계산해 보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조금 늦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계획이 바뀌는 일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여행은 혼자가 아닌 가족 여행이었다. 4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에 꽤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 두었기에, 첫날부터 일정이 어긋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한국 여권의 힘일까. 입국 절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길을 찾고 정보를 확인하려면 인터넷이 필수였다. 나는 유심이나 e심 대신 와이파이 포켓을 준비했다. 우선 e심은 최신 기종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 우리 가족에게는 맞지 않았다. 유심과 포켓을 두고 가성비를 비교해 보니 답은 와이파이 포켓이었다.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여행이기 때문에 기기 하나만 있으면 네 명까지 동시에 접속해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휴대전화는 한국에서 계속 연락을 받아야 했기에 번호를 바꾸는 방식은 고려하기 어려웠다.
여행이 끝난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아보면, 와이파이 포켓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4박 동안 머문 호텔의 와이파이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것도 몇 번씩 실패할 정도였다. 결국 호텔에 머무는 내내 우리는 와이파이 포켓만 사용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으로 가기 위해서는 MRT 표를 사야 했다. 동전처럼 생긴 보라색 플라스틱 토큰을 구입해야 하는데, 블로그에서 여러 번 읽어 봤음에도 한 번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뒤에 줄 선 사람이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네 개의 토큰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고 MRT 표시판을 찾아 걸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길 찾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플랫폼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환전과 교통권 구입 등 공항에서 해야 할 일들을 예상보다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호텔에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호텔은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만 처음 방문한 곳이라 가장 가까운 출구를 찾지 못했다. 결국 아무 출구로나 일단 지상으로 올라온 뒤, 구글 지도를 보며 호텔을 찾아갔다. 이후 며칠 동안 같은 일을 몇 번 더 겪고 나서야 가장 빠른 출구를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역 내부가 여러 구역과 번호로 나뉘어 있었고, 공사로 폐쇄된 출구도 있어 한 번에 찾기가 어려웠다.
호텔에 도착했지만 프런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다음 일정까지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로비에 앉아 짐을 정리하며 쉬고 있는데, 약 20분쯤 지나 한 직원이 나타났다. 그는 친절하게 우리의 짐을 맡아 주었다.
우리는 카메라만 챙겨 들고 거리로 나왔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다만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음 일정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시간. 우리는 근처 골목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하지만 결과는 조금 허무했다. 점심은 결국 먹지 못했고, 대신 밀크티 한 잔과 편의점에서 산 음료 몇 개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