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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말고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by 마늘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속편을 극장에서 보는 동안 나는 위스키 반 병과 맥주 두 캔 정도를 비웠다. 영화가 끝나고 직원이 술에 거나하게 취해있는 나를 깨울 때 난, 1년 전 헤어진 여자 친구가 나를 깨우는 줄 알고 그녀의 입에 입맞춤을 했다. 덕분에 왼쪽 뺨과 오른쪽 뺨이 번갈아가며 번쩍했고 잠깐 정신을 차린 나는 직원의 선처에 극장을 나와 나도 모르는 대전의 한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잠깐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두리번 둘러보니 마침 이 곳에서는 힐링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어림잡아봐도 반경 1km 이상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무척 큰 페스티벌이었다. 무려 100여 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부스에서 할 일 없이 졸고 있었고 2-300여 곳의 업체들이 참여하는 대형 페스티벌에서 각 업체들은 모래로 만들어진 특이한 완구부터 고무 형태의 진득진득한 인형까지 어린아이들에게 누가 더 많은 것을 판매할 수 있는지 보란 듯이 눈에 불을 켜고 시합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며 이것저것을 구경하던 일이 슬슬 질려가던 차에 눈길을 끄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음주가상체험>. 소방서와 재난본부, 경찰서 등에서 나와 아이들과 술을 못 마시는 사람들에게 가상 음주 체험을 시켜주는 부스였다. 때마침 나는 술기운이 떨어지고 있었기에 일단 보이는 빈자리에 앉았다. 환한 미소의 여경찰은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며 이상하게 생긴 안경을 씌우고는 물을 마시라 고했다. 그리고는 나보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라고 했다. 어지러웠다. 그리고 경찰은 말했다.


"어때요? 어지럽지요? 이게 바로 취한 것과 비슷한 거랍니다."


나는 화가 났다.


"이봐, 웃기지 마! 취한다는 것은 좀 더 고귀하게 스스로에게 희생적인 거라고! 걸음을 못 걸을 정도로 다리가 풀리고,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이 깡패 십여 명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픈 걸 알아도 (흠, 실제로 전날 필름이 끊겨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을 수도 있지만,) 또 마실 수밖에 없는, 또 마셔버려 이런 상태가 되도록 본인의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그런 숭고한 거라고!! 이 따위 어린애 놀음에 비교할 따위가 아니라고. 아, 놀음이 맞나, 노름이 맞나? 봐,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것도 숭고하게 취한 거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긴 하겠자만,... 암, 암! 암!! 그렇고말고!!! 취한다는 건 그런가라고! 이, 냥반아!!!"


나는 자리를 박차며 소리쳤다. 옆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깜짝 놀라 울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달래며 화난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나는 침착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그간 아껴두었던 술을 꺼냈다. 프라하를 여행할 때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압상트였다. 헤밍웨이나 그 외 많은 아티스트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술로 알코올 도수가 무척 높은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르큐르이다. 심지어 고흐는 이 술을 마시고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술로 지금도 그 환각 성분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판매금지가 되어 있는 술이기도 하다. 난 보란 듯이 병을 딴 뒤에 반 병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앞에 멍하니 서있던 경찰들이 느리게 다가왔고 잠시 뒤 나는 기억을 잃었다.



"이보오, 그게 지금 내가 이 철장 안에서 쉬고 있는 이유 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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