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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Sep 26. 2022

리스타트 51 - (41)

넘버 원


지하철 역에서


어느 늦은 오후, 나는 내가 지원했던 여러 곳의 직장 중 한 곳으로부터 입사를 할 수 없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또 한 번의 실패를 맛 본 셈이다. 과거에 내 몸을 이미 여러 번 때렸던 그 ‘실패’라는 파도들이 또 한 번 내 몸을 때렸다. 철썩, 또 철썩…


그래서 나는 내 고시원 방을 나온 후, 그 근처의 어느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삼각김밥 한 개, 새우깡 한 봉지,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사들고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햇볕은 너무 좋았고, 산들바람까지 부는 완연한 봄 날씨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밝고 따스한 봄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도 없었고, 또 그럴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지하철 역 역사 한 구석에 앉아서 삼각김밥을 한 번 베어 물고, 새우깡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은 후 우적 거리며 씹다가, 소주 병나발을 불면서 나 자신에게 다시 질문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대신 내겐 걱정해야 될 이슈가 몇 가지 더 생겼다.  


첫째로, 나는 무기한 서울에 머물면서 매일같이 여러 곳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또 가끔씩 받게 되는 불합격 통지서를 받아보는 일과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해보기도 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두번째로, 나는 보스턴 근교에 있는 법과대학원에서 2학년 과정으로 진급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부모님께 알려드렸을 때, 그리고 보스톤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다가 뒤돌아봤을 때,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모님께 또다시 한국에서 구직하는 것에 대해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 반드시 길을 찾아볼 거야.' 


아무튼 내가 그 지하철 역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지고 간 체류비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일단 구직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벌써 빈 병이 되어버린 소주 병과 삼각김밥을 쌌던 플라스틱 껍질을 주섬주섬 챙겨서 역사 내 쓰레기통에 버린 후, 먹다 남은 새우깡을 우적 거리며 그 지하철 역을 나왔다. 그날따라 도통 취기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를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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