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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다니엘 Sep 27. 2022

리스타트 51 - (42)

넘버 원


넘버 원


지하철 역사 밖은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며 어두워지기 시작한 이른 저녁시간이었고, 차도는 벌써 퇴근 차량으로 뒤덮였으며, 길거리 여기저기에서는 맛있는 저녁과 한 잔의 술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가라는 듯 손짓하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형형색색으로 유혹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어디선가 지글거리며 고기 굽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웃음소리, 하루의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상인들이 모는 1톤 트럭의 엔진 소리와 경적 소리, 그리고 배달 자전거와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는, 마치 어느 라디오 방송국의 퇴근시간을 알리는 교통 방송 프로그램에서나 들을 법한 음향들로 내 귓가를 자극했다.


그와 함께 내 눈앞에 펼쳐진 그 순간만의 풍경화 속의 주인공들은, 내가 걷는 인도(人道) 양 옆을 하나, 둘씩 채우기 시작한 좌판 장수들의 호객 손짓들과, 길거리 이곳저곳을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두리번거리는 교복 입은 학생들의 기웃거림, 그리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회식 장소가 어디지?”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서 너 명의 직장인들의 모습과 함께, 빈 여백 하나 없이 빽빽하게 그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들은, 어떻게 보면 흑백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나의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남아 있던 내 어릴 적 경험한 서울의 저녁 시간대 모습을, 그리고 내가 약 20년 간 그토록 궁금해했던 고국의 민낯의 모습을, 그냥 그렇게 덤덤하게 일필휘지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또한 그 당시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   

손수레 가득한 딸기를 파는 상인 옆을 지나며 그 향긋한 딸기향에 취하고, 호프집 옆에서 풍겨오는 맥주 내음과 기름진, 그러나 잘 튀긴 치킨 냄새에도 취한 나는 삼각김밥과 새우깡, 그리고 소주 한병으로 배를 채운 나 자신을 괜스레 탓하며 내가 머물던 고시원이 보이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나는 길 양쪽으로 즐비한 상점들의 어느 한 곳에서 가수 보아 씨의 <넘버 원>이라는 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머물던 고시원 바로 아래층에 노래방이 있었던 터라 그 노래를 여러 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그 노래의 가사가 내 귀에 꽂혔다.  


'넘버 원이라… 도대체 나는 언제쯤 내 인생의 모든 면에서 넘버 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과연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내 삶을 넘버 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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